제 12차 창작 콘테스트 응모 금속 외 4편

by 정아영 posted Aug 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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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


식었습니다.

이글이글 녹을 정도로 달구어져서

순식간에 수증기를 내며 식는

산세와 수세(水洗)를 거친 여린 금속처럼

 

그렇게 내 마음이라는 금속에

달라붙어 있던 잔여물은 떨어져나갔습니다

 

아. 나의 부질없는 미련,

한줌 남지 않을 정도로 깨끗해졌고

 

뜨거워질 때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면서

식을 때는 그것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것이

참 자조(自嘲)적으로 우스웠죠

 

저는 여전히 의미 없는

열풀림과 경화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삼월의 벚꽃


사랑은 어느 삼류 시처럼

그렇게 봄이 오듯 찾아온다는 게 맞았습니다

당신과 눈을 마주친 순간

흐드러지는 벚꽃잎들이

하늘에 우뚝 멈춰 서서는

당신이 등을 돌린 후

그제야 제 심장과 함께 떨어지더군요

 

그래서 난 이름조차 모르는 그대를

다가올 삼월의 벚꽃으로 부르렵니다.

 

그대는 허깨비예요

또 아주 영악하고요

 

미소 한 번에 내 맘을 이리 통째로 흔들고 가니

발걸음은 좀 무겁지 않으셨어요?

그 짧은 순간 저는 당신과 함께 늙어서

마지막엔 따스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잠에 드는 상상까지 했는데

 

그건 다 저의 바보 같은 착각이었군요.





목련의


눈앞에서 하늘거리며 지는 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마치 봄의 흰 눈이 내리는 듯하다

 

사명을 다한 잎은 자신을 만개 시키고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落花 한다


이미 떨어진 잎 하나의 울음소리야 누가 들어주냐만은.






바다와 소라껍데기


벙어리의 노래를 듣는다

이건 벙어리의 뜻, 나의 바람

 

벙어리는 덤덤히 노래한다

늘 그래왔다는 듯이


잔잔하고도 먹먹한 슬픔은

모래 휩쓸린 가을바다였다

 

아이의 귀에 소라껍데기 주워서

파도가 울먹이는 바다소리를 들려줄 때면

 

아이는 구화로 그 울음을 내게 전한다

 

, 고요한 바다여.






참새야


아침엔 추적추적 무거운 봄비가 내렸다

힘찬 날갯짓을 하는 참새는

천근과도 같은 그 부리를 들어 올려

기계적으로 알람을 대신하는 행위

그리도 연약한 생명은 세찬 빗줄기 아래

얼마나 젖어 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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