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리
우리 할아버지
정수리가 횡횡 벗겨지신 것은
기특하게 살았다며
하늘에서 쓰다듬은 까닭이다
방충망
거기 파리 한마리
방충망을 그러안고
빤히 나를 바라보며
눈을 비벼댄다 눈꼽이라도 낀듯
나는 뭐니 해도
그 싸구려 구슬 같은
눈망울이 꼴보기 싫어 손을 휙 저었다
그러자 날벼락이라도 맞은 마냥
파리는 비틀대며 날아가고
어디 뚫린 데나 없나 싶어
방충망에 다가갔는데
수천 개 사각들로 이루어진 그것이야말로
마치 파리 겹눈 같다
나는 눈을 비벼댔다
담배 한대
못 지킬 약속을 건
새끼손가락이 밉던 중에
마침 그것만한
담배가 주머니에 있고
고놈의 머리채를 끌어내어
깨물기도 하고
침도 적셔보다가
종내 꽁무늬에 불을 당기면은
쯔르륵 울음을 내며
접지도 못할 만큼 짧아지는 것이다.
봄봄
모처럼
산책하기 좋은 날씨라며
나들이 하는
구름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겨울잠 자던 잎사귀를
별안간 흔들어 깨우는
봄비는 녹차
부끄럼 많던 콧망울은
따사로운 숙녀가 되었고
털복숭이 옷장이
면도를 배워가는 이 즈음은
가로수가 부럽던
묶여 있던 자전거에도
봄내음이 풍긴다
첫사랑
허름한 옷장 속 나프탈렌 내음
뒤엉킨 덩쿨 속에서
부여잡는 소맷자락
낡은 외투의 어깨에 눈처럼 쌓인
하이얀 시간들을 털어내면
손 가득 주변 가득
피어나는 그리움
어느 겨울날을 떠올리며
외로운 듯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면
함께 늙어버린 귤 껍질
마른 주름 까슬하지만
나눠먹던 설레임은
아직도 과즙처럼 상큼하구나
응모자 성명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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