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옥 경
이슬에 함초롬 젖어있는 꽃잎
꽃 입술 서서히 열리고
햇살도 숨죽인 그 순간
봄바람에 사운대는 나비처럼
메마른 들판에 빗줄기처럼
은빛 물살 헤치며
튀어 오르는 물고기였다가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한없이 추락하는
완벽한 죽음과 부활의
사랑하는 그 순간
가시연꽃
장 옥 경
그날
땅이 흔들리더니
건물이 무너지고, 달리던 자동차를 삼키고
사람들을 덮치며
파도처럼 무섭게 밀려오던
검은 그림자
태풍이 지나가고
페허가 된 죽음의 도시엔
오열하는 사람들
파슈파티 사원에선 시신 태우는
연기 자욱한데
어둠이 지나면 햇살이 비추는가
어디선가 가냘프게 들리는 울음소리
싸늘하게 식은 엄마 품속에서
꼬물락 거리는 어린 생명
극도의 어둠과 공포 속 에서
온몸에 가시를 세운 채
자신의 두터운 잎을 찢어
꽃송이 꼭 감싸고 있다가
제 몸을 찢어 꽃을 내보낸
가시연꽃
장마
장 옥 경
비상의 또 다른 몸짓인가
바닥에 떨어진 그는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거나
산산이 부서지다가
어둠속으로 떠밀려간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는 저 물살
둑을 무너뜨리고
전신주를 쓰러뜨리고
도로를 침수시킨 그 순간
갈라진 구름 틈새로 또렷이 떠오르는 무지개
이슬방울 매달고 빼꼼이 고개 내민 초롱꽃
처마 끝 에서 젖은 깃털 말리고 있는 까치 두 마리
해피트리
장 옥 경
저토록 가벼워져야 움트는 날개인가
노을에 가슴 물든 채
끈적끈적한 수액 왈칵 쏟아내더니
잎새 모두 떨구고
묵언 정진 중인지
무거운 짐 훌훌 벗어놓고
풀잎 도르르 뒹구는 이슬처럼
가벼워진 몸 위에
햇살 쏟아질 때
푸른 빛 새벽을 향해
걸어 나온 해피트리
포르라니 올라오는 연두 빛 새순 좀봐
여울
장 옥 경
아침 햇살 불러내어
은실난실 반짝이다가
은어떼 푸륵푸륵 뛰어놀고
물안개에 젖어 혼곤하게 잠들더니
폭풍우에 휩쓸려 미친듯 달려가던
강은
바위 틈 모서리에서
휘청휘청 덜컥 무릎 꿇는다
산고를 겪는 산모처럼 뒤틀고 몸부림치다가
우우우 울다가 파닥거리면서 피어나는
진초록 하얀 물보라
기도 같고 절규 같은
황폐한 시간이 지난후
비로소 검푸른 바다로 나가는 인생길
사랑은
장 옥 경
사랑은
어떻게 왔던가
한 잎의 설레임으로
한 잎의 흔들림으로
서로에게
햇살이 되고
따뜻한 요람이 되고
8분음표로 출렁이다가
그리고
텅 빈 사막
자운영 다홍빛 꽃잎이
금새 푸른빛으로 변하지만
구름에 실려 오는
실낱같은 향기만으로도
그쪽으로 머리 둘려는
사랑
마주 서있음 만으로도
바라보는 눈빛 만으로도
하늘 문 열수 있는
오래 기다리고
기도하는
그런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