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하루
어둠이 머뭇거리면
눈을 켜고 창밖을 밝히며
채 가시지 않은 밤을 밀어낸다
이른 새벽
쭈그려 앉아 바쁜 손놀림
이방인 안방 차지하고
터줏대감 다 뽑아 버리네
뒤돌아서면 비웃듯이
꿈틀대며 텃새 부린다
너가냐 내가냐 우리가냐
깊이 파인 밭도랑도 웃는 구나
비가 오면 농부 발걸음
쉬어갈만 하건만
헝클어진 마음 가다듬고
어느새 또 흰 머리카락 뽑고 있어
인연
시작은 관심부터
호감이 자리 잡기까지
쉽게 맺어지는 것이 있던가
순수하고 볼 빨간 청춘
어느 시골 논밭에 들꽃처럼
이십대 사랑 부럽지 않소
원하는 것이 많으면
과연 누구와 살고 싶은 것일까
서로 좋아야 아끼고 보듬어
깨가 쏟아질 텐데
내가 소중하면
너도 소중하오
어설픈 만남이라도
같이 늙어갈 수 있다면 운명 아니겠소
북한산
봄이 가려니
새 옷으로 갈아입느라
아직도 숲 속은 바뻐
벌써 숲이 된 곳은
그늘이 들이어져
바람도 쉬어가는구나
햇살은 못다 핀 꽃을 재촉한다
송홧가루 날릴 때까지
그 누구 입김을 기다리며
막내도 활짝 웃고 있어
거친 숨소리 듣고 싶었나
땀 냄새가 그리웠나
시들어 가도 버티고 있다
예쁘다는 소리 듣고 싶어서
일산 꽃 박람회
곱게 차려입고
활짝 웃는 모습
새색시 미소처럼 아름답소
평생 찾아 다녀도
만나지 못한 임들
여기 다 모였구려
사람도 꽃들도
오늘은 다 모델이요
향기 있어 꿀벌도 함께했으니
순간포착 이 보다 더한 작품 있을까
봄 처녀 여신상
우아한 꽃 입고 납시어
행복 뿌려주옵시니
보고플 때 수시로 꺼내 보겠나이다
소나무
허구 넓은 세상
어이 그곳에 둥지 틀고 산다여
머물 터 그렇게 없었더냐
비바람도 비껴가는 아슬한 벽
네가 어흠이더냐
사계절 변하지 않는 절개
단풍 잎 떨게 만드는 위풍
호위병 까마귀 눈초리가 매섭다
바위도 모진 풍파 속
깎이고 무너지거늘
오뉴월 된서리 함박눈에도
푸름 잃지 않는 오만함
바위 속 파고들어
함께 사는 아담한 몸매
바위 꽃인가 소나무집인가
하늘이 맺어준 천생연분이오
이태열
010-4586-8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