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응모

by 카니라 posted Jun 0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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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 인형


내 가슴에 박힌 아릿한 대못이

나를 점점 공허하게 만들어서일까

영원히 당신의 흉터로 남고 싶다.

 

시작은 간단했다. 내 심장 안으로

그녀와 나를 넣고, 찢어진 모습을 바느질했다.

꼼꼼하고, 끊임없이 생기는 자국들

너야 마지막엔 태우면 그만이지만, 나는 자상에 화상까지 입는다.

 

그렇게 아파질수록 아파했었고

아릿할수록, 슬플수록, 짜릿할수록, 아찔할수록

나는 너였지만, 너는 내가 아니었나보다.

한번하고 버려질 초라한 인형이었나보다.

 

내 몸에 담긴 너의 흔적들이

너의 소모품이었단 사실을 잊지 못하게 해서일까

지워지지 않는 바늘자국에 차례로 못을 박는다.

영원히 당신의 흉터로 남고 싶으니까

 

 

마리오네트


잘 짜인 인형극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란

내 의지 따위는 별 상관없어

손 한 번 닿았을 때의 떨림과 흥분에

잊히는 작은 욕망이니깐

 

인형극은 항상 아름다리

관객들의 박수갈채에

나는 눈물이 흐를 수밖에 없어.

그나마 나를 서있게 당기던 실이

나를 던져버린 후에야 자유를 찾아 누울 수 있지.

 

그리곤 항상 오늘의 연극을 다시 돌아봐.

늘 그랬고 오늘도 그렇지만

바뀔 수 없기에

가장 아름다운 결말을 후회하는 것은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비극이야.

 

그리고 무언가를 원하는 나의 간절한 손짓은

유일한 꽃이 되어 평생의 가시로 남아버리지...

 

 

소원-강령의식


인형아, 인형아 내게로 와서 나의 소원을 들어다오.

내 가장 아끼는 새빨간 장미도 네게 주고

네가 가장 좋아하는 나의 초롱한 수정도 네게 주고

모두가 가장 부러워했던 비단결도 네게 줄테니

인형아, 인형아 나의 소원을 들어다오.

 

내 고운 모습 끝까지 지켜준다는 약속

내 부족한 부분을 전부 채워준다는 약속

평생 내 손발 되어주겠다는 약속

지켜질 수 있도록 인형아 나의 소원을 들어다오.

 

잠시 동안 깨어질 수 있는 사랑일지라도

내 피보다 붉었던 그 열정들도

이제는 실밥이 풀어지지 않도록, 아름답게 수놓을 수 있도록

인형아 인형아 나의 소원을 들어다오.

 

그가 평생 내 곁에 있을 수 있도록

 


평면거울


오른손을 뻗으면 왼손으로 날 잡아주고

왼손으로 찌르면 오른손가락으로 점찍어 줬다.

오른손을 드는 척 왼손을 들어도

나에게 맞춰주었다.

내가 어떤 부끄러운 동작을 해도

혼자가 아닌 둘이라 조금은 안심이 되었었다.

 

부족해서 일까, 적적해서 일까, 아니면 믿을 수 없어서 일까

문득 벽에 걸린 평면거울

헤어 나올 수 없다. 나는 내 상처를 보듬는다.

슬픔을 잊으려 꽃을 주어보아도

향기를 잊으려 향수를 뿌려보아도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평면거울은 나를 치유해 주는 척

상처를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한여름 밤의 꿈


이미 헤어진 그대는 어찌 살고 있는지

아직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지나간 시간이 나를 긁어오기에

문득 문득 의문이 듭니다.

 

그래서 찾아간 그대의 문 앞

담벼락에 핀 민들레를 보니 울컥합니다.

그래도 울먹이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문에서 나온 그대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리운 향수가 머릿속에 푸르게 푸르게 울려퍼지고

아찔한 그대의 눈빛은 내 눈 속의 얼음을 녹여버리고

지금 닿고 있는 당신의 절반의 절반

나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서 내 전부를 다시 맡겨봅니다.

 

술이나 한 모금 하면 지금의 어색함 나아질까

그리곤 아득한 행복에 취합니다.

그건 마치 한여름 밤의 꿈

 

여름의 해는 왜 이리 부지런한지

당신이 없는 밤은 길고 길다지만

여름밤은 짧고, 더위에 잠시나마 신기루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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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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