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회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 시 공모

by abckim3 posted Jun 09,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글자로 부르는 노래



어둠 속에 묻힌 글자들은 기차가 되어 달린다

뻐끔뻐끔 들리지 않는 말을 주고받는 모녀

창문에 비친 글자를 읽지만

모녀의 줄거리는 자꾸만 나뭇가지에 걸렸다

기척 없는 밤은 쉼 없이 별자리를 목에 걸었고

구멍 뚫린 바람만 첫 손님이 되었다

모녀는 비눗방울처럼 피어오르는 꿈을 주워 담기 위해

매번 주머니가 달린 옷을 입었고

어머니는 글자를 밟을까 까치발을 들고 다녔다

돌아오지 않는 밤은 누구의 빈집이 되어 줄까

한참의 중얼거림과 붉은 그림자로 주고받은 멜로디

고장 난 시계는 바람의 흔적을 온 몸으로 가둔다

집 안 곳곳에 걸린 글자 조각을 주워 모으는 모녀

듬성듬성 새겨진 지문이

낡은 가구처럼 귓가에 묻어 있다

누런 달은 자꾸만 밤하늘을 곱씹고

모녀는 함성 같은 별을 토해낸다

분주히 새벽을 읊조리는 그림자 뒤로

아이는 어머니의 울음을 한 움큼 먹고 잠에 든다

밤하늘엔 발송되지 못한 글자들이 둥둥

주인 없는 편지처럼 떠다니고

모녀는 오랜 시간 서로의 글자가 된다

입술 사이로 꽃물처럼 번지는 아침

모녀의 구멍 난 양말 사이로 봄바람이 들렀다 간다




어머니에게 행복을 선물 할게요



조용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게요

이를테면 낙원동 헌책방의 아침햇살 같은 우리 어머니 말예요


어머니는 늘 잡음뿐인 오늘의 페이지를 열어봐요

종잇장처럼 가벼운 우리 가족의 서사엔

언제나 제일 너덜너덜해진 어머니의 생이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고 있어요

그녀의 서두엔 차가운 아침식사가 달려 있고요

누군가가 휘갈겨 놓은 어머니라는 이름엔

잃어버린 청춘이 뒤죽박죽 흩어져 있어요

밤이 오면 군데군데 찢어진 생만 진열되고

절판된 기억들만 두꺼운 표지가 되어 어머니를 감싸주지요


가족에게 행복을 선물 하세요

귀가 시간이 담긴 페이지는 쉽게 넘어가지 않고

카운터에 앉아 헐값인 바람의 수를 세요

달팽이처럼 무거운 짐을 이고 산 어머니에겐

로맨스 소설도 모험 이야기도 펼쳐진 적 없었을 거예요

쪼글쪼글해진 책 속 어머니는 여전히 54페이지에서 갈 길을 잃었고요

흩어진 낱말은 헌책방 안을 떠돌아요


우리가족에게 행복을 선물 할게요

어머니가 좋아하는 라일락 향기엔 우리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요

미온의 공기는 자꾸 바코드에 찍히고

좀처럼 읽히지 않는 어머니의 제목 위로

출간되지 않은 바람이 아침을 읽어요

내일의 행복의 수를 세어 볼까요?

오랜 꿈을 고이 접어 밤하늘로 날리는 어머니

시린 동공 안에서 꿈은 별이 되어 반짝여요




드림 오브 타운



인터폰으로 쥐떼의 속죄를 엿들었다

암호를 외치듯 찍찍거리는 작은 사제들

급한 용건은 발자국을 길게 수놓았다

빠르게 벗어나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라며

바람과 생(生)은 쫓기듯 자취를 감췄다

듬직한 품은 오후 2시의 햇빛과도 같았고

하수구를 떠돌며 서로의 그림자를 찾았다

남겨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오염된 자리이기에

오랜 서식이 가끔은 공포스러울 때도 있다

갉아먹기에 유용한 이빨

갉아내기엔 많은 생명이 배 속을 부여잡고 있구나

한 달 치 식량이 자신의 몸보다 크게 느껴질 때

죽음은 꼬리를 쫓고 배는 뒤끓었다


오늘의 날씨가 좋다며 방랑하길 오래

아무도 이들을 도망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식량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으면

저절로 정직하고 엄숙해지는 표정

그들의 언어가 순식간에 바람에 새겨 진다

찍찍

코 푼 휴지처럼 붙어있는 숨

물고 늘어지는 시간은 영원히 그림자를 떠돌고

세상 아래 숨어사는 버릇은

아기 발자국을 남겼다




나의 집에 대하여



손가락질을 할 때면 흙먼지가 일어났다

포크레인은 눈길 닿는 곳마다

지붕 낮은 집들을 들이 밀었다

자꾸만 속이 얼얼해

바람은 담장에 몸을 지탱한 채 떨림을 받아낸다

나뭇잎은 이정표를 찾는 듯 흔들리고

더듬기를 반복했다


마을 사람들은 빈 그릇처럼 모여 앉아

운세와 팔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이고, 우리 이제 어찌 살아요

어디로 가야 하나요

밤바람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모래성을 쌓았고

작은 소음에도 그늘 밑으로 숨었다

몸을 웅크리는 법은 저절로 터득한 것

고층건물의 눈총에 뒤통수가 따가울 땐

모두들 숨죽여 노래를 불렀다


별들은 헛바람에도 절뚝였고

거미줄 마냥 간신히 붙어있는 시간들은

짧은 정착에 대해 이야기했다

타박타박 발걸음 소리가 마을을 덮으면

나도 모르게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젖은 길을 걸으며 구름 위에 집을 짓는 상상

하늘과 마지막으로 겨뤄본 적이 언제 였더라

잠이 안 오는 밤은 그리움보다 기다림이 더 크다

가로등 불빛이 한 잎씩 피어나면

아이들은 또 다른 집을 만들어 간다




행복 시장으로 오세요

 


김밥 한 줄, 해물 칼국수 한 그릇

떡볶이 두 접시, 국밥 세 그릇

오늘도 행복 시장엔 손님들의

말 많고 정 많은 사연이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새처럼 앉은 아이들은 봄이 되어 재잘거리며

오고 가는 발자국의 수를 세지요

서로 다른 보폭으로 흔적을 남겨도

행복 시장은 누구의 발자국인지 알 수 있어요

귀한 걸음들이 환한 마음으로 피어나면

행복 시장은 꽃 인사로 물들어요

종례 후에 손잡고 모인 아이들

퇴근 후에 어깨동무하고 모인 직장인들

모두 동그랗게 마주 보고 앉아

나뭇잎 위에 자신의 하루 일과를 줄줄이 써 내려가요

새벽바람부터 지금까지 모인 이야기들

두 손 가득 뭉치면 고소한 밥 향기는 배가 되고

인심 한 그릇과 사연 몇 숟갈만 있으면

너도 나도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지요

한 움큼 피어나는 세상 모든 이야기가

바로 우리 이야기라며

행복 시장은 붉게 영글어가는 마음도

모두 간직하고 있답니다

어느새 한 발짝 밤바람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하나 둘 자리를 뜨고

이부자리 편 달빛이 잠시 들렀다 가지요

향기를 묻히는 이들이 있어

행복 시장의 봄은 오늘도

세상 이야기가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인적사항>-------------------

- 이름 : 김수진

- 이메일 주소 : abckim3@daum.net

- 연락처 : 010-7494-0411

-------------------------------------------------


Articles

63 64 65 66 67 68 69 70 71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