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회 창작 콘테스트 이은정 시 응모

by 활선님 posted Jun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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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선분의 행적

 

인생은 제 짝의 선분을 찾아가는 시간여행이다

선분 ㄱㄴ이 교집합으로 묶인 것처럼

아기는 얼굴과 몸통이 선분으로 연결된

탯줄을 물고서 울음을 터트린다

 

수십 년 목을 맨 일터에서

목이 잘려버린 당신

이을 선분을 찾아 잠시 방황도 하겠지만

궤도를 이탈한 선분이

하늘로 튕겨 올라 갈 때까지

선분 ㄱㄴ은 꿋꿋이 지평선을 지켜낸다

 

하늘 사다리를 기다리는 당신의 머리 위로

폭죽을 단 선분들이 흠뻑 쏟아지고

밤새 노루발과 실패*의 밀당에도

선분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모양의 박음질을 산란하고 있다

 

선분 위의 그 모든 것에 입김을 불어넣을 때다

길게 뻗은 자동차 도로에도

무한 질주하다 뒤집힌 트레일러에도   

선분 ㄱㄴ의 간섭은 계속된다

 

인연이 스치듯 돌고 돌다보면

결국 선분은 만나게 되는 것이니까

 

*실패- 실을 거는 패


2.귀가

 

시든 햇살 골목을 파고들어

빗금 친 그늘 사위로 번져 갈 즈음

입사동기 승진 턱 따라간 그는

꿀꿀한 마음 소주잔에 구겨 넣은 채

축하한단 어색한 한마디

, 던지고 일어선다

 

어둠이 길들여진 집들의 지붕 위로

맷돌 같은 침묵이 내려앉는다

물먹은 파지처럼 축 늘어진 가장의 얇은 몸뚱어리

중력을 버티지 못해 풍경은 흔들리고

스피커폰 트로트 선율에

엇박자로 탕탕 울려대는 구둣발 소리

소란과 정적의 경계를 더듬고 있다

 

쓸쓸함이 밀물 들듯

바람에 흔들린 얇은 몸뚱어리 막 날아갈듯 해도

비상구 찾아 모퉁이 돌다 보면

철대문에 면상 쑤셔박은 백구

컹컹, 알은 체를 한다

그의 얼굴에 너털웃음이 부채살처럼 퍼진다

 

담장 곁 창문가로 스민 불빛

화롯불 속 온기로 심장을 달구듯

가장의 굽은 어깰 지그시 보듬는다

 

3. 화본역 급수탑


중앙선 간이역 한 귀퉁이 삭아버린 급수탑

철로를 굽어보고 섰다

 

물지게 지고 수십 년 수액을 퍼 올리느라

가쁜 숨 몰아쉬던 날들

콘크리트 껍질에 들러붙은

모래 알갱이들이 바스러져 내렸다

 

스무 해 전 장사 치른 노부의 몸피도 그러했다

검버섯 핀 얼굴과

물기 한 방울 남아있지 않은 거죽에서

허연 몸 비늘이 일었다

 

엉킨 발길들 쉬었다 가는

급수탕 옆 낡은 벤치

나는 그곳에 엉덩이를 걸치고는 증기기관차를 기다렸다 올 기약이 없는데도 날마다 그러고 있었다

 

4.구부러진 것들에 대한 애도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공사장 앞을 지나갈 땐 조심하라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탓이다

하필이면 새 타이어에

이 구부러진 놈이 박힐게 뭐람

수리공은 머리만 가뭇이 나와 있는 놈을

팽개치며 중얼거렸다

 

폐 지하철역 구석진 곳

골판지에 몸이 낀 노숙자는

죽은 지 한 달 만에 꽁꽁 언 몸을

구질구질한 삶에서 빼냈다

 

꼬부라져 죽은 그는

죽어서도 다릴 뻗지 못했다 한다

바람 따라 휘어버린

내 어머니의 등이 그러하듯

타이어에서 버려진 못은

구부러진 채로 붉게

녹 쓸어 갈 것이다

 

5.할미꽃


 

무덤 새

고개 숙인 꽂들 함초롬히 피어있다

 

기막힌 사연들 풀어헤쳤나

머리칼 하얗게 세고

낙화의 옹이 자국 같은 씨앗들

올올이 맺혀 있다

 

향긋한 바람이 목덜밀 간질이자

가는 꽃댈 꼿꼿이 세워

길 떠날 채빌 서두른다

언덕 너머

새 보금자리엔 또 어떤 기막힌 사연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이름 이은정

연락처 010 8906 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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