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선분의 행적
인생은 제 짝의 선분을 찾아가는 시간여행이다
선분 ㄱㄴ이 교집합으로 묶인 것처럼
아기는 얼굴과 몸통이 선분으로 연결된
탯줄을 물고서 울음을 터트린다
수십 년 목을 맨 일터에서
목이 잘려버린 당신
이을 선분을 찾아 잠시 방황도 하겠지만
궤도를 이탈한 선분이
하늘로 튕겨 올라 갈 때까지
선분 ㄱㄴ은 꿋꿋이 지평선을 지켜낸다
하늘 사다리를 기다리는 당신의 머리 위로
폭죽을 단 선분들이 흠뻑 쏟아지고
밤새 노루발과 실패*의 밀당에도
선분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모양의 박음질을 산란하고 있다
선분 위의 그 모든 것에 입김을 불어넣을 때다
길게 뻗은 자동차 도로에도
무한 질주하다 뒤집힌 트레일러에도
선분 ㄱㄴ의 간섭은 계속된다
인연이 스치듯 돌고 돌다보면
결국 선분은 만나게 되는 것이니까
*실패- 실을 거는 패
2.귀가
시든 햇살 골목을 파고들어
빗금 친 그늘 사위로 번져 갈 즈음
입사동기 승진 턱 따라간 그는
꿀꿀한 마음 소주잔에 구겨 넣은 채
축하한단 어색한 한마디
툭, 던지고 일어선다
어둠이 길들여진 집들의 지붕 위로
맷돌 같은 침묵이 내려앉는다
물먹은 파지처럼 축 늘어진 가장의 얇은 몸뚱어리
중력을 버티지 못해 풍경은 흔들리고
스피커폰 트로트 선율에
엇박자로 탕탕 울려대는 구둣발 소리
소란과 정적의 경계를 더듬고 있다
쓸쓸함이 밀물 들듯
바람에 흔들린 얇은 몸뚱어리 막 날아갈듯 해도
비상구 찾아 모퉁이 돌다 보면
철대문에 면상 쑤셔박은 백구
컹컹, 알은 체를 한다
그의 얼굴에 너털웃음이 부채살처럼 퍼진다
담장 곁 창문가로 스민 불빛
화롯불 속 온기로 심장을 달구듯
가장의 굽은 어깰 지그시 보듬는다
3. 화본역 급수탑
중앙선 간이역 한 귀퉁이 삭아버린 급수탑
철로를 굽어보고 섰다
물지게 지고 수십 년 수액을 퍼 올리느라
가쁜 숨 몰아쉬던 날들
콘크리트 껍질에 들러붙은
모래 알갱이들이 바스러져 내렸다
스무 해 전 장사 치른 노부의 몸피도 그러했다
검버섯 핀 얼굴과
물기 한 방울 남아있지 않은 거죽에서
허연 몸 비늘이 일었다
엉킨 발길들 쉬었다 가는
급수탕 옆 낡은 벤치
나는 그곳에 엉덩이를 걸치고는 증기기관차를 기다렸다 올 기약이 없는데도 날마다 그러고 있었다
4.구부러진 것들에 대한 애도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공사장 앞을 지나갈 땐 조심하라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탓이다
하필이면 새 타이어에
이 구부러진 놈이 박힐게 뭐람
수리공은 머리만 가뭇이 나와 있는 놈을
팽개치며 중얼거렸다
폐 지하철역 구석진 곳
골판지에 몸이 낀 노숙자는
죽은 지 한 달 만에 꽁꽁 언 몸을
구질구질한 삶에서 빼냈다
꼬부라져 죽은 그는
죽어서도 다릴 뻗지 못했다 한다
바람 따라 휘어버린
내 어머니의 등이 그러하듯
타이어에서 버려진 못은
구부러진 채로 붉게
녹 쓸어 갈 것이다
5.할미꽃
무덤 새
고개 숙인 꽂들 함초롬히 피어있다
기막힌 사연들 풀어헤쳤나
머리칼 하얗게 세고
낙화의 옹이 자국 같은 씨앗들
올올이 맺혀 있다
향긋한 바람이 목덜밀 간질이자
가는 꽃댈 꼿꼿이 세워
길 떠날 채빌 서두른다
언덕 너머
새 보금자리엔 또 어떤 기막힌 사연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이름 이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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