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응모

by 처음처럼 posted Jun 2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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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적막

 

달그락거리는 얼음 소리마저

귀에 거슬린다

 

너와 나의 거리는 손을 건네면 닿을 거리지만

적당한 얘기, 금세 옅어지는 미소

몇 번의 눈 마주침, 다시 정적

 

닿을 듯 닿지 않는 너와 나는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하고

마주한 우리는 마주하지 않은 채

애꿎은 식탁보만 만지작거린다

 

….

 

무엇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인 걸까

이야기들은 꼬리를 감춘 채

연결될 수 없는 꼬리잡기를 하는 모양새다

 

적당한 온도

둘은 극단적이게 미지근한 대화만 나눌 뿐

뜨거워지지 못한다

 

웃고 있지만 웃고 있지 않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 없으며

가까워지지만 멀어지고 있다

 

아이스 잔에 담긴 얼음을 빨대로 다시 한 번 굴려본

금고 비밀번호를 맞추듯 이리저리 굴려보아도

우리 사이의 정답은 좀처럼 맞춰지지 않는다

 

얼음 두어 개를 입에 넣고 이리저리 굴려본다

으적 소리를 내며 깨물어 보고 잔 얼음을 다시 굴려도 본다

시끄러운 얼음 소리가 오늘따라 고요하다

더 차가워지기 전에 집에 가야겠다.


2. 숙취

 

지  

운   

 

   일    

렁     는    불빛들……

   

 

역겹게,

…... 뒤엉킨

네 모습         술잔들    

온갖        그리움

 

뒤섞인 기억이 어지럽게 나를 더욱 만든ㄷ…...

 

게워내고 또 게워내도

목젖을

       잡는

 

무엇인가 분명히 있다

 

다시!     한잔

      

세상이 어 지

워 진다……


3. 동그라미


동그라미 그리는데

힘을 너무 세게 쥐었나?

원 주위로 흑심의 파편이

삐뚤빼뚤하게 튀어나간다

 

하얀 스케치에

지우개를 스윽 문질러 보지만

주위로 크게 번져만 간다

어떡하지? 이게 첫 장인데……

 

수많은 얼룩이 뒤덮일 동안

동그라미 그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문득 바라보니

처음의 것과 너무 닮아서

더는 그릴 수 없겠다

 

흐린 자국 사이에 비친

동그라미

 

가만히 스케치북을 바라보니

웃기다

 

미련스럽게도

한 장의 도화지가 헤질 때까지

다음 장으로 넘기지 않았네

내가 가두려던 원 안에 내가 갇혔네


4. 겨울나무

 

에어컨 없이는 못 살 것 같던 여름이 지나고

존재 자체로 쌀쌀한 가을이 왔습니다

오늘도 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고

늘 앉는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밖은 낙엽소리로 무척 분주하네요

자신을 견고히 하려

오히려 근심을 벌거벗는 나무

 

왜 나는 그러지 못했던 걸까요?

 

더위를 막으려 애쓰던 창문도

벽 한쪽에 기대어 휴식을 취합니다

그의 노고가 헛되지 않게

시원한 바람이 주위를 가득 메웁니다

 

내일도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킬 겁니다

그리고 되뇌겠죠

나도 시원한 창가 옆에 앉아

겨울 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5.새벽 1

 

TV를 끄고 문밖으로 나와, 쫓겨난 아이처럼 몸을 떨며 담배를 태운다. 사람들이 깰 까봐 거리의 어둠도 사뿐 내린다. 망막에 맺힌 잔상을 곱씹으려 눈을 지긋이 감아 본다. 그러자 마음 한 켠에 웅크리고 있던 드라마의 여운과, 거리에서 스물스물 벽을 타고 올라온 적당한 소음이 검은 화면에서 나와 연극을 펼친다.

 

타이어가 아스팔트에 달라붙은 모래먼지들을 벗겨내는 소리, ‘우웅소리를 내며 나의 몸을 반응케 하는 바람소리, 정체불명 남성의 호쾌한 웃음소리, 택시가 겨울공기를 빗겨가는 소리. 두 주인공이 서로의 마음을 표현 못 해 엇갈리는 장면, 그 사이에 힘겨워 하던 장면, 그러다 우연히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는 장면, 그리고 행복한 결말.

 

이 모든 것이 내 귀에 어우러져 나를 평온케 했다.

 

맞은편 아파트를 바라보니 열에 아홉은 불이 꺼져 있다. 하지만 개중에도 몇몇은 나의 방처럼 밝다. 다들 각자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이끌고 있겠지. 누군가에겐 다음날 아침을 위해 잠이 드는 시간이거나, 담배를 태우는 시간, 방금 본 드라마를 생각하는 시간, 미래의 걱정에 이불을 뒤척이는 시간, 문득 첫사랑이 그리워 추억에 잠기는 시간이다.

 

아파트사이에 가려진 택시들이 빨간 불을 켜고있다. 누군가의 발이 되어 주기 위해, 베란다 앞에서 방황하는 나처럼 목적 없이 서성인다.

 

나는 누군가에게 발이 되어 줄 수 있는가. 손을 잡아준 기억도, 눈물을 안아준 기억도 가물한데 하물며 타인의 발이 되어 줄 수 있을까? 불 켜져 있는 방에 들어가 오늘하루는 이만하면 괜찮다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속삭이며 등불을 꺼주고 싶은 이 시간. 새벽 1시의 밤은 지나치게 화려해 내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이름: 이희택

연락처: 010-8970-7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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