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응모 (여행 외 4편)

by 여리여리 posted Jul 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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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지나온 길을 단 한 발자국도 잊고 싶지 않다.

나아갈 수 많은 발걸음 중 단 한 발자국도 헛디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고,

절대 그럴 수 없다.

잊어버린 발자국은 그것이 무엇보다 소중했을 지라도 내곁을 떠나고,

헛디딘 한발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남는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음은

잊고싶지 않은 수많은 발자국들, 멈추지 않았기에 만날 수 있었던 것들.

이 모든 것들이 멈추지 말라며 속삭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속삭임은 이미 헛디딘 한발에서, 어느새 무언가를 잊어버린 한발에서.

멈춰서도 잊혀질 것을, 아무리 조심해도 헛디딜 것을 알기 때문에.






감사

말이 가진 힘은 어디서 오는가.


물리력에서, 움직이는 입에서

그저 그것 뿐인 것에서 나오는 말은 시끄러운 공기에 불과하다.


말함이 가지는 힘은 그것이

내안의 무언가가 발현될 때,

입을 통해 남몰래, 하지만 거세게 나아간다.


그런데 왜.


이런 사실을 잊은 거짓된 감사들이

이 세상엔 빗발치고, 나아가 강요되는가.


감사하며 사는 인생은 축복받는 것이지만,

억지를 부리면서 축복을 구걸해야 하는 삶이라면,

그 거짓된 감사는 그 서글픈 삶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낼 뿐 아닌가.



작은 탐험

사막에서 찾은 예쁜 모래알

돌담에서 만난 정다운 덩굴

도시에서 느끼는

활기차고, 때로는 서글프고, 지쳐있는

어느날, 어떤 시간에는 조용하기도 한 북적거림의 낭만

지하철의 덜컹거림, 좁은 골목의 전깃줄.

그렇게 나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 모든것을 찾아나선다.

그래서, 나의 눈은 언제나 작은 탐험을 해야만 한다.



시를 쓰기위한 시

세상이 날 주무르는 사이에,

내가 갈피를 못찾고 닳아갈 때,

내 마음이 들어갈 자리를 비워두고 하염없이 기다리던

그 두꺼운 공책에는 속없는 먼지만이 눈치없이 쌓여나갔다.

그제서야 난 메말라 버린 마음을 뉘이려 공책의 먼지를 털었다.

그리고 맹세한다.

1. 나 있는 그대로를 이곳에 내려놓을 것을.

2. 겉뿐인 아름다움만을 쫒다 텅 비어버린 마음을 이곳에 내려놓지 않을것을.

3. 끝없는 상상으로 하여금 이곳을 다채롭고 수많은 나로 채울 것을.

4. 어느곳에도,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이곳에서만큼은 온전히 자유로울 것을.

나는 맹세한다.


그리고 공책을 편다.

이곳의 빈자리를 풍성한 아름다움으로 색칠할 무언가를 찾아

내 머릿속을 휘저어

불현듯 손에 들어온 단어를 더듬어

촉감을 살피고 부드럽게, 그리고 신중하게 내려놓으며

그렇게 한칸, 한칸.

때로는 화려하고, 때로는 수수할

한편의 시를 수놓는다.



질투

밝게 빛나니 / 이토록 아름다우니

눈이 부셨다./ 눈이 부셨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앞서 달려나가던 얼굴에 깃든 행복감이

나의 초라하고 한심한 모습을 맑게 비췄다.

그저 좋아서 빤히, 더 유심히 쳐다보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내 동경은 우울해졌다.


행복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경은 행복해야 한다.

힘을 내어 쫒을 수 있기 때문에

동경은 행복해야 한다.


밝게 빛나니 / 이토록 아름다우니

눈이 부셨다./ 눈이 부셨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억지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