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응모 ('관성' 외 4편)

by 장송곡 posted Jul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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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

 

26도로 고정된 냉방과 평일 오전의 한가함에서 어렵지 않게 찾겠지어떤 고함으로도 이름을 부를  있어

그래도 어른이 되고 나선 부를 일이 없었지끝이 말라붙은 가지와 키가 작은 사람모두 예외 없이 꺾이고 

거리는 어느새 비워져있지딱한 사람 유체를 바닥에  바르고 나서야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을 찾지

이름한평생 묶여있어도  이름을 물어본 사람은 없었지자주 어두웠고 때때로 가쁘게 숨을 쉬었지.

 

시퍼런 어둠 속에서  희끗한 형태가 아카시아인지 나는   없어그래도  많은 가지들 가지에 

역병처럼 퍼진 가시도 나는 보이지 않지만어차피 어두운 관계에선 옷에 적힌 글자가 서로의 모든 것이니까

그래도  향기향기낙인 같은  향기가코를 박고 맡을 때는 모르는  연인 같은 것은 속일  없어

항상  시퍼런  속에서 이쪽을 보고 있어아니어쩌면 태연하게 속일  있는그런 감기 걸린 사람을 

찾고 있겠지영악하지오르막 뒤에 숨은 내리막처럼태양이 저문 오르막은 가파른 오르막은하얗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나를 덮쳐도 보겠지.


 




회상 

-가끔은 그리움이 그리웠다.


깊게 박혀 곪았거나 멍으로 남은 이름.
주머니에 숨긴 사진이나 주머니 속 공백처럼
나는 가끔 삶의 부분을 무게 달아본다.

훈연에 구워 거뭇해진 장면에
가장 깨끗한 후회를.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거짓말이
거울처럼 뒤를 비췄다.

내게 허락된 소박한 사치는
우습게도 항상 모자란 용서뿐이었고,
우울은 성병처럼, 입을 섞을 때마다 옮겨 다녔다.

세모난 달은 나를 찢으며 모서리를 버려갔고
그 가벼운 주둥이가 제일 먼저 사라졌다.
허억- 하고 내뱉던 발음 없는 공기는
거짓된 간증처럼 십자가에 막혀 흩어졌다.

그때, 너는 너무나 젖어 있었다.
건져낼수록 찢어졌고, 마를수록 갈라졌다.
나는 모든 게 온전하게 남기를 바랐음에
차갑게 나를 담가 너를 끌어안았다.

눈을 감는 것으로 모든 것이 뚜렷해지는 밤이면
점자처럼 너를 느끼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망향

 

전공 책   페이지 여백은 서정의 낙서로 불법 점거 중입니다

강렬한 여름이몇 주의 짧은 봄을 서투른 낭만이란 이름으로 덧쓸 

진실의 무게를 피해 달아난 이들은 자연스레 한곳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달이 밝은 날에는 그것만으로 그림자가 생긴다던가

검게만 느껴지는 밤하늘은 사실 짙은 파란색이라던가

핸드폰 카메라로도 충분히 별을 찍을  있다는  쓸모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고향은 도피와 상경을 구분할  없었습니다

목소리 한번 듣기 어렵다는 점도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피신의 나날은 빨리 달리는 이의 죽음을 빌고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이 오면꿈처럼 눈꺼풀 속을 개근하였습니다.

 

 애인처럼

인사 없이 헤어진 만남들은 

골목 어귀에서 자주 밟혔고

그때마다 입안에 남아있던 인사말들은 

쓰게 묵어갔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산책 나와 한참을 걷는 

한참을 걷고 나서야  이유를 찾는 

그제야 철봉이 있는 곳을 찾는 

 

도착하고 나서야 공사로 철봉이 사라졌다는  깨닫는 

철봉 대신 남아있는 평행봉에 아이처럼 올라가 보는 

문득 찾아온 저녁놀에  시절 친구에게 전화하는 

 

 동네에는 이제 철봉도 없냐?

예전엔 마냥 흔한  철봉이었는데

이제는 보기도 힘드네

 

 사냐?

어차피 다음 주에  서울  텐데

그때는  보자

 

의미 없는 약속을 하는 

정처 없는 발걸음을 억지로 삼키고

애처로운 방구석으로 가는 

 

 장면이 적적하고 모나다가도

다시금 찾아온 적막이 머쓱하고 반가워지는 

 

산책 나와 한참을 걷는 

한참을 걷고 나서야  이유를 찾는 

그제야 철봉이 있는 곳을 찾는 

 

도착하고 나서야 공사로 철봉이 사라졌다는  깨닫는 

철봉 대신 남아있는 평행봉에 아이처럼 올라가 보는 

문득 찾아온 저녁놀에  시절 친구에게 전화하는 

 

 동네에는 이제 철봉도 없냐?

예전엔 마냥 흔한  철봉이었는데

이제는 보기도 힘드네

 

 사냐?

어차피 다음 주에  서울  텐데

그때는  보자

 

의미 없는 약속을 하는 

정처 없는 발걸음을 억지로 삼키고

애처로운 방구석으로 가는 

 

 장면이 적적하고 모나다가도

다시금 찾아온 적막이 머쓱하고 반가워지는 


 





부고(訃告)

 

아이를 잃은 부모처럼

여름은 해가 지날수록 독기를 품었다

그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한 칸짜리 옥탑방이었다.

 

새벽 일을 마치고, 늦은 오후쯤에나 일어나 처음 들은 이야기는 오래간 알고 지낸 친구의 부고였다. 부의금으로 낼 돈도 없을뿐더러 그 흔한 정장 한 벌도 없었기에 나는 차마 찾아갈 수 없었다

 

다음날 그 친구가 찾아왔다.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들어온 친구는 데면하게 나와 마주 앉았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못했다. 할 말은 많았지만 이미 많은 말들이 의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밥을 짓는 전기밥솥에선 천둥을 가득 품은 하늘 소리가 났다. 그래도 나는 살아남고 싶어서 언젠가는 그 천둥이라도 품고 잠든 적이 있었다. 언제나처럼 여전히 내 삶에는 의식주밖에 없었고, 그 이후로 내 삶은 자주 비참해졌다.

 

나는 떠난다는 친구의 실밥에도 손을 댈 수 없었다. 어쩌면, 나만이 이 비참한 관계를 친구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나는 항상 모든 걸 주고도 전단지나 몇 장 받아올 뿐이었다.

 

긴 숲을 빠져나온 바람은 홀로 시원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많은걸 털어버리기라도 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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