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차 창작 콘테스트 시 부문 응모 (여름병 외 4편)

by 희아 posted Aug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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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병

 

오래된 기억은 곰팡이가 피어 있다

해 들지 않아 가득 찬 습한 냄새

차라리 이끼가 끼었다면 좋았을걸

 

그 기억을 먹으려

속을 애써 게워 내는

8월이 없어졌으면

 

아니, 처음부터

그 기억을 더럽힌

장마가 없었더라면

 

시린 계곡물에도

깨끗해지지 않길래

그대로 물을 묻힌 채

파묻어 버렸다

 

흙을 두껍게 쌓고는

다시 꺼내보지 않는다

 

다만 매해 작은 병을 앓는다

내년에는 안 그럴 듯 지독하게




죽어가는 초저녁 만찬

 

어느 날,

비어 있는 냉장고를 보며

장을 봐 와야지 싶었다

아무 계획 없이 나선 길이었다

 

나로 하여금 숨을 좀먹고 사는데

도대체 뭐를 더 바라야 할까

삶의 의욕이 식어가는 여름이었다

 

그래서 집 주변을 빙빙 돌다가

별 소득 없이 다시 집으로,

집마저도 날 반겨주지는 않았다

 

정착하지 못하는 삶에

끼니가 무슨 상관일까?

 

오늘은 그냥 나를 먹었다

아무 의미 없는 한 입 거리였다




회상시

 

선풍기 소리를 빗소리라

착각하던 밤이 그리워

미풍 선풍기에 집중하던

그 날의 이야기다

 

화자인 내가 청자인 내게

말을 걸던 그 시절의 나

그때의 내가 궁금하여라

 

모든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서

의도치 않아도 내게 시를 헌정하던

그 사람의 시를 읽다가 울어버렸다

 

이제는 너만큼 예쁜 시를 쓰지 못해

아름답다는 표현을 차마 담지 못해

머리가 굵어졌다는 건 마냥 좋지만은 않아

 

오늘도 시를 쓰며 한숨을 쉰다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지우개가 닳는다

 

웬일로 내리는 장대비라

착각조차 못 해 서러워

미풍 선풍기를 꺼버렸던

그 날의 이야기였다




불면

 

당신 없는 초새벽에는 고민이 많아서

못해도 초저녁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고독에 잡아 먹히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허나 그마저도 포기한 자정에는

이불을 걷어내고 천장의 별자리를

하염없이 세었던 것도 같습니다

모두 당신의 탓이렵니다

당신과의 저녁을 함께하기 위해

당신 없는 새벽을 얻어 버렸습니다

당신이 잠들지 않았으면 어쩌나

의미 없는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하여도 동만 튼다면 당신 없이

까무룩 잠이 들 수 있을 줄 알았기에

그때까지라도 당신을 생각하자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불면이 여전합니다

당신께 닿지 않을 말입니다만

그래도 당신은 숙면뿐이 몰랐으면 합니다




해를 먹은 당신

 

님은 어둠이 싫으시다며

하늘을 삼키셨지요?

 

덕분에 제 위에는

태양 하나만이 덩그러이

달은 어둠 없이

기죽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늘을 소화하시고 나면

다음에는 무엇이려나요?

 

저 밝은 눈부심이 싫다며

해를 먹으시려나요,

아니면 움츠림이 싫다며

달을 먹으시려나요?

 

당신의 영원한 호()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터인데

그래도 언젠가 저들은

님께 잡아먹히겠지요?




성명: 김희민

이메일: heemin352@gmail.com

HP 연락처: 010-6376-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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