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에게
선선한 가을밤입니다. 아파트 뒷길의 나무 그림자들은 은밀함을 드리우지요. 잘 지내고 있어요? 어째서 나는 아직까지 당신을 그리워하는지 알 수가 없지만, 아마 평생 당신을 잊어야만 하는 게 내 운명이겠지요. 몹시 피곤한 나는 오늘도 이렇게 쓰고 또 씁니다. 그리고 당신을 기억합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이 납니다. 어느 가수가 10번째 앨범을 내고 나서 그토록 그리워한 연인을 잊었다 하니 나도 얼마만큼 쓰고 또 써야 당신을 잊을 수 있는 건지요. 한 사람을 잊기 위해서 백번을 노력하고, 또 그 노력의 두 배를 노력하고 그리고 난 후에 늙어가는 것이 인생일까요? 그리움도 애절함도 오랜 집착도 모두 사라진 이 시대에 나의 사랑은 얼마나 촌스럽고 내 기억은 얼마나 고집스러운지요.
당신의 눈물이 없었더라면 더 쉽게 잊을 수 있었을 것을. 왜 당신은 내 앞에서 그토록 울었던지요.
덧없는 시간과 덧없는 인생, 고단한 하루 속에서 나는 당신의 향기를 그리워합니다. 공간과 시간을 넘어 나에게 전해져 온 바다향기와 별이 반짝이는 소금기어린 향기.
내 속에 있는 魔性 과 당신속의 그림자가 광기를 일으킨 걸까요. 정체모를 그 향기는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영혼의 한자락일 테지요.
다시 쓸쓸해질만한 계절이 왔습니다. 그럼 늘 안녕히.
안녕
밤이 깊다고 말하지 말아요.
눈물이 흘러내려도 닦지 말아요.
마음 아픈 이들의
흘러내린 모래성이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가면
잔에 따른 술 한 잔은
작은 웅덩이처럼 모든 것을
침잠케 해요.
가세요.
나의 사랑
이젠 가세요.
Why not?
어느 날 말이야
우연히 너의 글을 읽었어.
그리고 한 대 맞은 것 같았지.
꼼짝도 할 수 없었어.
너와 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나는 잊어버렸던,
오랫동안 봉인한
우물을 여는 느낌이었지.
넌 그 때 내게 글을 쓰라고 말했어.
Why not?
안 될 이유 없잖아요.
순간 내 앞에는
모든 순간이 스쳐지나갔어.
한낮의 고됨과 밤의 영감
사랑과 실패, 믿음과 배신
만남과 헤어짐, 이성과 감성.
생의 의미와 방황, 목적.
내가 놓치고 지나가는 모든 것들.
내가 묻어버리고 지나갔던 모든 것들.
내가 나를 부인하던 모든 날들.
난 그 속에서 들었지.
Why not?
당신은 참 별이었지
긴 긴 시간을 기다리고,
긴 긴 시간을 그리워하며
또 기다려
당신을 눈 앞에서
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깨달았지.
당신은
나와는
다른 별의 사람이란 걸.
나처럼
건조한 마음, 조각난 외로움, 가난한 삶일 거라는
내 착각이 박살나던 것은
불과 1분도 걸리지 않았지.
당신은 그만큼 빛이 났지.
의기양양하고 단단하고 날렵했지.
부유했고, 젊었고, 치기어린 힘이 서려있었지.
당신에게는
토성고리같이 겹겹의 멋진 테두리가 쳐져있어
내 손가락,
내 눈빛 하나
닿을 수도 없었지.
나란 존재는 너무 하잘것 없었지.
불과 1m도 안 되는 거리에
나와 당신이 존재해도
우리 둘의 세계는
금성과 명왕성 거리 같았지.
우리가 눈을 마주쳤을 때
나의 예리함이 무뎌질만큼
당신의 눈빛은 단단했어.
나라는 창이 들어가지도 않는,
나라는 시도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거대한 석조의 성.
그것이 당신이었지.
나의 말은 당신의 귓가로
도달하기도 전에
공기 중에 흩어져 부유했지.
그리고
당신은 나라는 존재조차 모르겠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이 준 단비에 기지개를 펴고
당신이 준 씨앗에 삶을 다시 일으켰던
나는
당신에게는 그저
바람에 휩쓸려간 민들레 홀씨였을 거야.
그래 이제 말할게
고마웠어.
당신의 신화를, 실재를
깨닫게 해 주어서.
그리고
이제 나의 길을 홀로 가게 해주어서.
안녕.
눈이 큰 가인이
우리아버진 공장장
우리엄마는 필리핀 사람
고함치는 무서운 아버지
말없는 엄마는 기계만 돌리고
한번도 선물받은 적 없는 나.
이제까지 생일에도
우리 가족은 조용했어.
친구들은 날 좋아하지 않아
난 매일 학교에서 싸웠지.
내가 잘못했을 때도
잘못이 없을 때도
난 싸우고 또 싸웠어.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서.
내 맘은 우울해
아무도 날 알아봐주지 않지.
난 그림 하나는 끝장나게 잘 그려.
어떨 땐 그림을 그려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곤 해
그 때는 좀 행복해져.
난 시키는대로 하는 게 싫어.
다들 내가 착한 아이가 되길 바라.
내 맘은 부글부글한 화산.
아무도 날 이해해주지 않아.
그래도 그래도.
내 재능은 날 배신하지 않을거야
난 사랑받고 싶어.
성명 : 장채원
E-mail : dooly1021@naver.com/
닉네임 : 리미트
010-3922-8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