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응모

by 남궁중심 posted Sep 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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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빈손으로 왔다 가는 길


우리 모두는 

세상에 손님으로 왔다


빚 없고

짐 없고

셈 없는

손님으로 왔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 손님으로 왔다


하룻밤 묵고

하룻밤 사이

하룻길 떠날

하룻밤 나그네로 왔다


거 여보쇼

날 새어 동트면 떠날 양반

뭘 그리 손아귀에 한 움큼

쥐어지고 주무시나


거 여보쇼

하룻밤 묵고

구름같이 떠날 양반

뭘 그리 바지춤에

두둑이 채워놓으시었소


우리 모두는

세상에 손님으로 왔다


신세지고 답례도 못한 채

울고웃다 인사도 못한 채

훌쩍 떠날...,


하룻밤 손님으로 왔다

하룻길 나그네로 왔다



2. 가족


달빛이 구름을 삼킬 때

까아만 도화지 입가에

배시시 눈웃음 비칠 때

터엉빈 하늘에 살포시

별빛이 은은히 비낄 때


비로소 우리는 한자리 모인다

하루의 추억을 주거니 받거니

때로는 푸념과 노여움 뒤섞여

식탁에 각자의 이름을 내걸고

희망과 기쁨의 눈시울 붉힌다



3. 작은 새


새가 날아왔다

적빛도 청빛도 아닌 보랏빛 새


저 작은 짐승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나는 모른다


새는 날아 들어왔다

불현듯 가는 날개를 접고

급강하해왔다


그는 예고도 없이

나의 차가운 품에 뛰어들었다


난 저 작은 짐승이 탐이 났다

두고두고 보노라면

자나깨나 좋을 테지


호올로 걸어가는 좁은 길을

따스하게 밝히는 달빛이 되어줄 테니


나는 새를 거두어 날려 보냈다

새는 앞만 보고 훌쩍 날아갔다

푸드덕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나 홀로 내 길 걸어가고

새는 저대로 구름밭을 헤엄쳐 갔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불행하진 않았다



4. 바람되어


물살을 거슬러 마주 버티는

파도는 되고 싶지 않다


물살에 떠밀려 사라지는

연약한 갈대도 되긴 싫다


물살을 타고서

물살과 더불어

두둥실 춤추는

바람이 되고 싶다


부드럽고 새파란 바닷바람 되고 싶다



5. 아파트


천 가구가 모여 사는 아파트

가구가 호를 이루고 호는 동을 만들고

동은 드디어 높고 웅대한 단지를 일구어 냈다


슈퍼마켓, 헬스장 ,미용실, 사무소, 경비실, 공원, 주차장,

야쿠르트 아줌마, 영어학원, 태권도학원, 한의원, 치과, 문방구...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일구어 냈다


높고 웅대한 아파트는 작고 차가운 하나의 섬

외따로 떨어진 아기자기 작은 섬


하늘로 하늘로만 뻗으면

각박해지나

어느 하나 누군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웃조차 모른다


천 가구가 모여 사는 높고 웅대한 아파트에는

천 개의 섬이 외따로 떨어져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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