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
신이시여
당신은 나를 등졌소
소리쳤네
아니오
그대가 나를 등졌소
대답하네
당신이 신이오
물으니 아니라하여
누구냐 되물었네
나는 당신이오
할멈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제 목 꺾어낸 저 꽃도
아픔을 느낀단다
고통을 느끼지 못해서도
눈물 흘릴 줄 몰라서도 아닌
말 않는 것이란다
지고 나서야 깨닫는
가장 활짝 피었을 때의
아름다움과 소중함
그리고 후회
사랑이란 그런 거란다
그러니 얘야, 울지 마려무나
저 꽃도 언젠간 진단다
만개했다가 잎이 지고
썩어 문드러진 자리에
새로이 싹이 움트고
모든 꽃은 그런 거란다
비등점 융해점 빙점
너는 왜 끓지 않느냐
너는 왜 녹지 않느냐
너는 왜 얼지 않느냐
서로에게 던지는
그 질문의 근원은
무지의 두려움이요
미지의 공포이니
당신 그리고 나
우리 그네들 누군가의
불순물 압력 밀도 점도
농도 염도 촉매 용기
의문과 호기심으로
탐구하고 연구하고
발견과 이해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되오
모르면 두렵기 마련이고
알면 알 수록 더 궁금하니
그 속에는 사랑과 평화
모든 시작이 있소
조개
썰물에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너는
그 빛깔이 참으로 묘하고 아름다웠다
줄기 진 매끈한 표면 위에 덧칠한 듯
생기를 품은 순수함에 매료되어서는
모래 위에다 배를 깔고 턱을 괴고선
해가 저물도록 지긋하게 바라보았다
난 온갖 것이 더러운 육지의 것이라서
넌 육지에 더렵혀진 바다의 것이라서
이름은 무엇인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어느 것 하나 네게 물어보지 못하였다
난 육지의 것이라, 넌 바다의 것이라,
밀물이 쓸려오면 그저 뒷걸음 치겠지
새장
1
수평선 너머 이름 모를 섬을 찾아서
새장을 떠날 적에 사람들이 말했네
그렇게 떠난 이들이 수없이 많단다
섬 찾은 이 없어 망망대해 떠돈단다
돈 없어 익사한 시체가 그득하단다
내 옆에 이 새도 그렇게 떠났다가
후회하고 부리를 돌려 돌아왔단다
날 쪼는 여럿 부리들 손가락질하며
나는 그래도 섬을 찾아 날아갈거요
밥 잘 주는 새 새장이나 찾으시오
이름 모를 섬 찾아 높이 날아가네
2
이름 모를 섬 찾아 떠난 그 새는
출생이 새장 속 두 월급쟁이였다
아이새 17년 해 넘겨 지낼 적에
아비새가 이름 모를 섬 찾아 떠나
제때 돌아오지 못해 정처를 잃고
다섯 해 굽어 떠돌아다니며 지냈다
아이새는 날개짓마저 미숙해서는
제 스스로 나는 법을 몰랐었지만
다섯 해 굽을 적에 날개가 자라서는
아비새의 울음소리에 깃털 퍼덕이며
새장에서 나와 아비새와 재회했다
아이새는 지난 17년의 모습보다
더 짙어진 5년 후 아비새의 환부에
울지 않고 날개를 펼쳐 자랑했다
철창 밖의 삶을 지내온 지 십몇 년
싸늘한 주검으로 일주일만에 발견된
아비새의 사인은 지독한 집안내력이었다
3
호상이 아니어라 호상이 아니어라
시끄럽게 재잘대는 부리들 속에서
아이새는 무덤 곁에 삼일을 지냈다
네 날개짓이 자랑스럽단다 말했다
얼마나 높건 날개질이 크던간에
날개질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그러나 다시 새장 속 아이새가
멋지게 날기를 바라지만서도
제 처지가 그 날개짓이었던 탓에
바라지만서도 바랄 수가 없어
네 날개짓이 자랑스럽단다 말했다
아비새의 삶 끝에 남은 것만 보며
사람들 부리를 이리저리 놀릴 적에
아이새는 그들을 연민했다
섬을 찾은 자의 날개짓에도
섬을 찾지 못한 자의 날개짓에도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서
점점 얇아지는 그들의 날갯죽지에
아이새는 날개를 펼쳐 올렸다
4
수평선 너머 이름 모를 섬을 찾아
새장을 떠나 날개 펼치고 날아가네
바다 위 표류하는 시체들 가운데
나를 발견하네 아비새를 발견하네
그들의 날개가 꺾이기 전 펼쳐낸
가장 빛난 순간의 깃털 있는 그곳에
내가 향할 이름 모를 섬이 있네
수평선 너머 이름 모를 섬을 찾아
오늘도 두 날개 펼쳐 날아가네
김규식 ( kimguesik199@gmail.com / 010-3088-7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