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말리자 입니다 외 4편

by 희희성 posted Oct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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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말리자입니다 


 

나는 흑인 소년 말리자입니다

한국에서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해서

3년 전 한국 땅을 밟았어요

최근에는 공장 일을 하다 도망쳐 나왔는데

갈 곳이 그곳뿐이라 다시 돌아갔어요

자주 뒤꿈치가 갈라 터지고

서둘러 걷는 법을 잊은 지는 오래랍니다

사람들은 다시 돌아온 나를

환영하듯 깔깔거렸어요

얼굴엔 시멘트 가루가 잔뜩 묻었고요

나는 종종 은행잎을 왕관처럼 쓰고 모험을 꿈꿨지요

작은 꿈에도 하늘 높이 오르던 나였는데

왜 돌아오는 건 차가운 명령과 간결해지는 대답뿐일까요

혼자 먹는 식사 시간엔 언제나

빈속을 달래던 바람이 찾아왔고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아

서로의 이력과 미래에 대해 흥얼거렸어요

쉽게 거부당하는 삶엔 위로하듯

밤하늘도 별자리를 보여 줬어요

하루가 깊은 이유는

돌아갈 길을 찾기 위해서 일까요

달은 지독하게 천식을 앓았고

자주 고향 쪽으로 기울었어요

복권 한 장 꿈꿔본 적 없는 생에도

나는 시시때때로 헛된 믿음에 대해 이야기 했고요

어둠이 장문의 편지를 읽듯 범람하는 날이면

나는 피터팬이 된 것처럼

밤새 어릴 적 꿈들을 노래했어요

두고 온 가족들의 얼굴이 그리운 밤

나는 오늘도 간직해둔 이야기들 고이 접어

밤하늘에 띄워 보내요




남과 북이 사는 세상



그 날은 걸음마를 뗀 아이처럼

불현듯 찾아왔어요

삼팔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은 긴 시간 그리움을 가슴 한켠 켜두었지요


오래도록 견고한 기다림을 지켜온 걸까요

함께 나눈 계절 한 페이지를 열어보면

통행금지인 밤과 목마른 휴식이 묻어 있어요

회고록을 쓰듯 서로 다녀간 자리엔

둥글레 향기가 피어났고요

이른 봄밤 우리는 틈만 나면 악수를 청했답니다

어렵게 성사된 자리

기울어지고 비틀거린 풍경들 너머

고독나무는 어둠을 삼켰고

함께 태어나 자란 기억들은 자꾸만 코끝까지 차올랐어요

마음에도 우물이 있다는데

옥죄여온 시간들이 목메어 울던 밤

시시때때로 언덕을 넘었던 계절들

핏빛의 아픔은 자꾸만 찾아왔고 다시 일어났어요

귀한 걸음들은 눈 속에서도 빛이 났고요

작은 기척에도 우리는 꽃봉오리를 피웠답니다


웅크리며 우리가 이뤄낸 시간들을 보아요

단정히 걸어둔 계절, 우리가 사는 세상

오늘 그리웠던 당신들의 얼굴을 밤하늘에 그려 봅니다

늘 가까이 두고도 달려가지 못했던 우리

진실 된 마음으로 노래하고 마주해요

온전히 피기 위한

작은 소망을 이제야 알 것 같아

오늘 당신들의 옆자리에 바람 한 줌 두고 갑니다




초록의 노래를 들어 보세요



풀잎들과 인사를 나누며 봄볕이 수놓은 길을 걸어요

봉화산 꼭대기에서부터 피어나는 하루 일과와

중랑구를 가득 채운 작은 집들

우리 동네는 사계절이 자라나는 곳이랍니다


중랑구의 아침에

햇살이 한 방울 톡 떨어지면

새싹들은 땅을 주무르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요

지붕 위에 앉은 색색의 꿈을 노래하면

바람과 꽃은 어깨동무하듯 봄을 연주하고요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올해도 커다란 곡식 주머니를 선물해 준답니다


옆집 아저씨와 우리 아버지는

아기 손처럼 고운 순간들을 가득 담아

봉화산 곳곳에 심어 두지요

처음을 함께 걸으며 개굴개굴

우렁찬 울음을 터뜨리는 녀석

여름이 오는 소리를 먼저 알아챈 걸까요


나뭇잎은 가을바람에 춤추며 초록을 깨우고

돗자리 피듯 성큼 다가온 봉화산 이야기

조용한 움직임에도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미완성의 그림을 그려가지요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가을처럼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어요


온기가 그리운 날, 나는

어릴 적 심어둔 겨울의 꿈 풀어 하늘에 뿌려요

진수성찬 아니어도 이 밤에 모두 귀 기울이고

향긋한 냄새가 콧등에 앉으면

밤하늘에 일렁이는 별무리도

봉화산 너머로 동네 사람들 희로애락을 한 술 가득 떠요

오늘 밤도 중랑구의 이야기는 한껏 무르익어 간답니다




산골

-노루의 생


    탕! 이 거리를 걷는 동안 얻은 것은 회복 불능의 밤이다 온 길을 되돌아가기에 이미 늦은 것을 직감할 땐 접골된 뼈들이 흉부를 압박해왔다 점점 불은 몸집, 접질린 잠들을 바람에 재우고 싶을 땐 어떻게 해야 하지?


    밤새 쌓인 적막이 시시때때로 숨통을 조여 온다 물어뜯긴 공복과 거칠어지는 추위를 가늠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방아쇠다 숨통이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빠른 감각이 필요 했어


    조용하고 신속하게 배 안의 체취를 찾아 킁킁거린다


    뜀박질 하던 순간들이 염증처럼 번지고 바람이 쓸고 간 자리에서 심장박동수를 센다 내가 뱉어낸 통증은 죄다 등 뒤로 엉겨 붙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죄, 어둠에 익숙한 눈동자들이 가쁜 호흡을 몰아쉰다 뻔한 오류에도 난 한껏 발아했다 유리온실에 갇힌 것처럼 나는 서서히 이곳의 온기를 느끼기로 했다






우리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에요

엄마는 비행기를 처음 탔을 때 댐처럼 울었대요

사람들은 그 모습이 꽃 같다고 했대요


엄마가 뻐끔뻐끔 울 때마다

숲은 가장 큰 숨을 내쉬었어요

부드러운 혀를 가진지 오래인데

왜 모국어는 목구멍에만 집을 짓는 걸까요

밤이 찾아오면 아버지의 구둣발 소리는 커지고

누렇게 뜬 달에도 몽둥이질은 이어졌고요

엄마가 좋아하는 아까시나무는 자주 흔들렸어요

마른 바람의 부채질은

링거액을 잔뜩 부어주는 것 같기도 했지요

나는 그것이 엄마가 흔들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가끔 잘났다는 말을

잘 날수 있다는 말로 잘못 알아들을 때

엄마는 왜 위험한 상상을 했을까요

새들은 봄의 신부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하얀 꽃과 마당, 잔뜩 상기된 얼굴에는

검은 상복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했어요


엄마 따라 내 입술에도 수시로 가뭄이 왔어요

아까시아꽃은 그 해 봄, 새햐얀 면사포를 쓰고

긴 시간 여행을 떠났어요

거친 무릎에서 작은 집을 지었던 이야기

엄마는 그리운 것들이 모이면

숲에서 가장 큰 댐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어요

나는 매일 밤 별들의 흔적을 따라

숲에서 가장 큰 호흡을 내쉬어요



<인적사항>

-이름 : 김희성

-이메일 : rlagltjd1235@naver.com

-연락처 : 010-6295-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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