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차 창작 콘테스트 공모전 지우개 외 4편

by 풋사과 posted Oct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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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망각의 강물에 떠내려 가는 기억

어머니가 조금씩 떠내려 가시네 

커다란 멍에를 걸머지고 고난의 물결에 하나둘

기억을 떠내려 보내고 계시네

살아온 세월을 조금씩 떼어내고 계시네

밭을 떼어 내시더니 이내 부엌을 떼어 내시네

그리고는 금새 자식들을 떼어내시네

물결은 무심히 흐르는데 기억을 차츰 지우고 계시네

다 지우고 난 물결이 어머니 자신의

호흡마저 지우려 하시네

어머니는 거침 없이 호흡을 지우고 계시네

강물이 점점 빨라지네 어머니를

휘감고 떠나시네 아무도 그걸 막지 못하네

처다보고 눈물만 짓다가 돌아오네

내 손에 한움큼 지우개의 물결이 흐르네

 

 

 

 

망모(亡母)

 

가문비나무의 눈시울이 젖어있어요

눈물샘에 크나큰 배가 정박해 있네요

조금 지나면 저 커다란 어창에서 하역작업이 시작 되려나봅니다

어머니의 영정 사진이 웃고있어요

눈물이 하역을 하염없이 이루어지고있었죠

들판으로 나갔다가 갑자기 쏟아진 소낙비를

맞으며 돌아 오는 여름날의 오후처럼

눈물의 샘터는 줄줄줄 망자의 관을 떠 돕니다

어머니가 떠난 후 빈 배의 정박은 파도에

맡겨진 채 방파제의 옆구리를 쿵쾅거리겠죠

하역을 마친 연락선은 연락도 없이 떠나고

또 어디론가 선적의 길을 떠나 슬픔을 싣고 또

한 탱크의 눈물을 길어 오느라 분주해 지겠죠

경칩이 우수를 밀어냅니다 망종을 지나

입하의 문턱으로 들어 서는 날 지칫하다가

들판에서 뜻하지 않을 소낙비를 맞게 될지 몰라요

나는 소매에 쏟아질 눈물의 흉터를 봅니다

슬픔만 잠겼던 소매에 어머니의 얼굴이 달려있군요

미소를 지으며 지긋하신 음성이 실오라기에서

꾸물꾸물 애벌레처럼 눈시울로 기어 나오는군요

 

 

 

새조개

 

참새 한마리 바다로 갔다

바람이 갯벌의 조가비에 참새를 싣고

둥지를 날아 새알을 품고 살았다

새알은 갯지렁이를 먹고

바다는 새알을 먹고

파도는 갯벌을 마시고 살았다

참새는 조가비 속에서 오래오래 살았다

부리를 감추고 죽은 듯이 살았다

바다에도 참새가 산다

부리를 감추고 산다

조가비에 둥지를 짓고 바다를 먹고산다

 

 

 

퉁퉁 베이커리

 

길 모퉁이에 아내는 빵집을 열었다

해외 유명 빵집과 경쟁 하려면 이름부터

남달라야 한다고 난데없이 퉁퉁 베이커리

빵이 부풀어 오르 듯 꿈이 부풀어 올랐다

자신의 넉넉한 인정을 믿었던건 아닌지

공갈빵처럼 툭 꺼지면 한 입밖에 안되는

퉁퉁 부풀어 오른 빵은 푸짐한 인상을 켠다

빵같이 부푼 미래를 입식한 통통 베이커리

손님들의 색다른 각도의 입맛을 찾아서

독특한 상호의 호기심도 생기기 시작했다

쉴틈없어서 빵보다 더 부풀어 오른 다리

저 퉁퉁 부은 다리에 알맞는 퉁퉁 베이커리

때론 넉넉한 인정미 넘치는 이름같지만

고된 하루가 노릇하게 익어가는 격무로

일상의 행복을 부풀게 하는 가상한 노동이다

베이커리의 독특한 상호처럼 이왕이면

아내의 주머니가 퉁퉁 부풀어 오르기를


만세에 관한 고찰

 

음지에 남아있는 냉기는 아직 월동의 상처다

그리 어렵게 찾아 나선 사막같은 독립의 길

밤 사이에 사라지는 모랫길은 산을 만들고

끈질기게 수만년의 나이테를 그려 넣는 낙타가 된다

 

그 무릎의 각도에서 애국을 발견하는 일이다

 

봄을 알리는 꽃눈의 가지에서 물소리가 들리고

새들의 포란이 체온을 높이는 일이라면 동토에 결빙된 만세를

녹이는 일이란 쉽게 세상도 바꾸어 가게 되는 것일까

 

봄꽃들이 일제히 만세의 세상을 부르짓던 날

우리는 어느 강변에서 꽃잎을 따서 탄압의 소굴에 지우던 일을

무심히 바라보는 날이 아려온다

 

귓전에 가득 봄 바람이 함성의 끝자락을 맞잡으면

오래된 기억을 좇아 가는 애국은 사막에 쏟아낸 빗방울 같다

머나먼 시간의 뒤편으로 영혼의 이름으로 부르던 함성이다

그 쓰라린 탄압의 상처를 어루고 응시하는 계절

 

작은 손아귀에 만세를 불렀던 들판이 파릇파릇하게 눈을 뜬다

물소리의 계곡이 가파른 벼랑에 치켜든 손이 푸르기만 하다



최병규

albam23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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