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차 창작콘테스트 응모 시부분 - 윗집 아주머니 외 4편

by 수훈 posted Nov 2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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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 아주머니

내가 사는 ○○○동 ○○○○호
윗집 아주머니는 교회를 다니시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서 인사 나누면
항상 안부를 물으시며 덧붙여 하는 말씀 

하느님이 항상 계시니 잘 지내라
예수님이 보고 계시니 잘 될거야

내게는 그닥 도움은 안 되지만
어쩌면 필요가 없는 공염불이지만

선의의 진심 담겨 있으니
미사여구도 나쁘지 않더라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헛된 희망 갖지 않도록
내 마음 떨칠 수 있도록

함부로 지켜주시지 마소서

생의 지속만이 당신의 전능이면
차라리 단숨에 죽도록 하소서

지옥 같은 이 세상을
하늘이라 여길 것이니

제발 사라지도록 하소서



행복 짓기

맛있게 행복을 먹으려고

마음을 깨끗이 씻고
솥에 담아 밥을 지었더니

행복이 너무 질다

아무래도 너무 많은 눈물로 지었나보다

그래서 이번에는
눈물 말고 미소로 지었다

그제야 행복이 맛있게 지어지더라



할아버지 집

나의 할아버지 집은

길가에 가로등조차 없어서
밤에는 자동차 전조등을 죄다 켜야 했던 곳

짜장면 배달할 엄두도 못 내는
논과 밭이 바로 마주보이던 곳

꼬마가 외눈박이 빨간 오토바이
할아버지와 같이 타던 곳

마당에서 일가친척들과
삼겹살 구워 상추에 싸먹던 곳

친척집에 있었던 낡은 컴퓨터가
인터넷 안 되는 할아버지 집에 처박혀 있었지

할 수 있었던 거라곤

시작하는 것부터 온종일 걸리고
싱글 플레이만 되는 스타크래프트

영어 몰라서 뭣도 모른 채

마우스와 키보드만
달칵달칵 눌러대었어

나의 할아버지 집은

거실에 하나, 안방에 하나, 할아버지 방에 하나
다 합쳐 텔레비전이 세 대나 있던 곳

외양간에서 누렁이 소가
뜨끈뜨끈한 쇠죽 먹던 곳

명절에 모두 모여 특선 영화를
타이타닉부터 아이언맨 투까지 봤던 곳

할머니가 끓여준 진한 고깃국이
언제나 참으로 맛있었던 곳

이젠 가지 못해서 마음에 걸리는
할아버지의 항상 같은 덕담 지겹도록 듣던

그게 할아버지 집



데미그라스 소스

어느새 기억이 가물가물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반짝이 고깔 쓰고

생일 축하 노래 들으며
생일 특선 먹던 그날

지금 생각해보니 유치하지만
데미그라스 소스 맛처럼 달달했던 그때

이제는 사라진 가게와
인생에서 사라진 달콤함

지금은 누가 나에게
달달한 데미그라스 소스 뿌려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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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훈
shlove4767@naver.com
010-4563-6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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