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
그대 위해 나는 쓰겠습니다.
나를 위해 웃어줬던 그 미소를 위해서.
나에게 내어주었던 그 품을 위해서.
그 따뜻한 기운을 위해서.
그리고, 그대를 절실히도 원했던 나를 위해서.
그대를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도 숨죽여 그리던 나를 위해서.
그대에게 닿지 않기 위해 숨죽여 모래성을 쌓던 나를 위해서.
그런 이기적인 나를 위해서.
나를 존재하게 도와준 그대 위해서, 나는 쓰겠습니다.
어제
어제는 진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그대가 꼭 우나 하였습니다.
빗소리 잔잔한 것이,
그대의 목소리를 꼭 다시 듣는 것 같더군요.
어둔 먹구름 사이로 그대의 발치라도 보일까 하여,
나는 하루 내도록 하늘만 올려다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대는 내게 그림자조차 보여주지 않더군요.
하지만 이조차 괜찮습니다.
이 비가 그대의 눈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인데요.
그대가 행복하게 웃고만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인데요.
그러면 아무렴 괜찮습니다.
그대의 모든 것,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
당신 닮은 어제의 빗소리를 내가 모조리 기억하고 있으니.
그러면 어제의 슬픈 나도 괜찮습니다.
햇살
고즈넉한 도서실 안으로 햇살이 흐리게 들어섭니다.
그대가 즐겨 읽던 책 꺼내 들면,
그 위를 지키던 먼지가 햇살 속으로,
그대 미소를 똑 닮은,
그 햇살로라도 스며들어보려 마구 몸부림칩니다.
나는 그 먼지를 쳐다봅니다.
그리고 이내,
바랜 표지에,
제목을 알 수 없는 이 책을,
나는 또 내려다봅니다.
햇살이 어느새 올라앉은 책 위로는,
눈물이 떨어져 미소에 오점을 남기었습니다.
이 책에라도,
그렇게 그리워하던,
그대의 웃음.
그대의 슬픔.
그대의 손길.
그리고 그대의 향기.
느낄 수나 있을까 눈물을 분신 삼아 그 위를 쓰다듬어봅니다.
한 번만이라도, 더 당신을 아낀다 말해볼걸.
사랑한다 말해라도 볼걸.
내가 이렇게 통탄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대는 분명 통쾌해할까요.
그대는 분명 마음 아파할까요.
이 흐릿한 햇살보다 더 환하게 웃어줄까요.
손을잡다
그대 작은 손
나의 큰 손
중간에 맞닿아 꼭 붙들어보면
그 손이 꼭 심장이라도 된 것 같아서
새벽이 끝나가는 창가에 앉아 퍼런 여명을 응시하며
그대와 맞췄던 손의 온기를 찾아보려 애를 쓰던
그 온기를 찾기라도 한다면 밤잠은 이루지 못하는 것이 되었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여명에게 "오늘은 그 온기를 찾았니"하고 물어보면
따끔거리게도 내 손은 뛰기 시작해서
이제는 그대의 손을 보지 않아도
이제는 그대의 손을 찾지 않아도
내 심장 터지도록 마주 잡아주던
그대의 작은 손이
나를 아직도 울립니다
아직도 퍼런 여명에게 "오늘은 그 온기를 찾았니"를 물어보도록
그 온기를, 차갑게 식어버린 온기를 "찾았니"하고 물어보게
나의 손이 홀로 식어가도록
나를 울리는 중입니다
몰랐다.
난 항상 모르는지요.
난 항상 한발 늦는지요.
그래서 그대가 날 영영 떠나버린 것인지요.
그런 것이라면,
그런 것이라면,
그대에게 사랑을 맹세하던 때.
내가 평생을 모르고 산 것으로 하겠어요.
그대 쓴 미소 짓던 때.
내가 평생을 모르고 산 것으로 하겠어요.
그러면 그대 운명 내가 모르며,
당신 어딘가에서 웃고 지내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내가 평생을 모르고 산 것으로 하겠어요.
정은빈 / qlsdms2671@naver.com / 010-5177-26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