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회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응모

by 적극적방관자 posted Nov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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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 그 후줄근한 잔상 

 

그 사랑은 그렇게 짧았다

밝은 해 두렵고 옅은 녹음 쑥스러워

30촉 붉은 빛 찾아 들던 그 사랑이

더는 부끄럽지 않고

낯선 상황에 뻔뻔해질 무렵,

이별은 슬그머니 찾아 왔다

끝이 없다 했다

그 욕심이 결국 죄를 잉태했다

어리석음이 분수마저 벗었을 때

부르지 않은 파국도 함께 왔다

 

!

사랑의 추레함이란!

그땐 몰랐다.

마지막 몸짓을 나누고 나서야

사랑이 사랑이 아님을 알았다

추하게 보이기 싫어

애써 담담했던 그 이별로

심한 몸살을 앓아야 했다.

울며 매달렸더면

없는 포악이라도 빌렸더면

비루한 정,

떼어졌을까

 

짧은 윤회처럼

몇 번의 녹음이 지나고

찬 바람에 옷깃 여미는 지금

그 사랑이 다시 보고 싶다.

그러나

이걸 다시 사랑이라 부르긴 싫다.

 

 

 

 

2. 어느 삶에든...

 

잿빛 하늘은 금세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다

어디선가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 올랐다

아마도 귀가시간을 놓친 게지

아님, 새끼들 보챔에 등 떠밀렸던지

웬지 날갯짓이 버거워 보인다.

 

그의 마음도 저 하늘과 같을까

담배 연기를 쫒는 그의 눈에 언뜻 물기가 어렸다

한 순간의 오한은

초겨울 문턱을 넘은 계절 탓만은 아니지

미물의 버거운 날갯짓에서 그만치나 초라한 자신을 본 것이리라

고작 쉰의 나이에 꼴난 70평생 보다 더 두터운 더께로 버둥거리는...

그가 뱉어 낸 회한은 관심 없다는 듯

제 길 바쁜 구름이 바람을 재촉한다

 

어느 삶이라고 어두움이 없을까

황혼에 이르면, 죽음 앞에 서면

있든 없든, 성공했든 실패했든

오직 한 길뿐인 것을.

 

위로랍시고 개뿔!

마침내 그의 뺨에 빗물이 흘러 내렸다

 

 

 

 

3. 갓뎀 아르헨티나!

 

그 애의 눈은

시종일관 불안을 담고 있었어

그것은

언뜻언뜻 두려움으로 바뀌기도 했지

눈치를 보면서도

나를 바로 보지는 못하더군

'소심하기는...

저래서야 무슨...'

불안하기는 나라고 다르지 않았어

'막상 결행하면 어쩌지'

'경찰을 불러야 하나 '

'그냥 모른 체 할까'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안 보는 체 살피면서도 생각은 빠르게 응징과 관용을 넘나들었지

'왜 저렇게 미적대지 바보 아냐'

차라리 식은 땀은

살짝 배 부른 그 애보다 내게서 흘렀어

반대편 여인 둘이 한 장 까미사를 들고 올 때도

그 애의 떨리는 손은

여전히 오페르타 까하 속에 있었거든

거리 여인 같은 미소 교환하며

깎인 옷 값 받고 잔돈 내 주는 동안

내 주의력은 그 애를 놓치고 있었나 봐

삼베바지 방귀 새듯 그렇게 그 애도 갔을거야

여인 둘이 가게 문을 나설 때

당연히 그 애가 있어야 할 자리는 염치 좋게 비어 있더군

가당찮은 배신감에 문을 박찼지

아이는 까제 끝 모퉁이를 조롱이라도 하듯 여유롭게 돌고 있더군

'라드론'이라는 외침은 목 울대에 걸리었어

기껏해야 파쟈도 몇 장을 제 옷 속에 대충 구겨 넣었을 거야

그걸 또 싸게 팔아 그 애는 제 새끼와 입에 풀칠을 하겠지

화 보다는 뜨거운 뭔가가 가슴을 먹먹하게 하데

흐릿한 하늘이 눈 속에 들어왔어

! 빌어먹을 포퓰리즘이여!

갓뎀 아르헨티나다


주) *까미사:와이셔츠 *오페르타 까하:떨이물건 상자 

    *파쟈도:흠있는 물건 *까제:거리 *라드론:도둑

 

 

 

 


4. 옛사랑 보내기

 

그 사람이 나를 모른다 한다

5월 햇살 같은 미소 한 조각, 도토리 키 재던 말쌈 한 토막이 아직 내 가슴에 남았는데

그니는 나를 잊었다 한다

하기사 세월의 힘이 어디 만만한가

30년 세월이든 반년 세월이든 세월이 갖는 속성은 망각 아니던가

사실 그니는 첫사랑 소녀와 별반 닮은 바 없다

복스런 얼굴에 해맑은 미소는 닮았다 쳐도 얼굴 반을 가린 동그란 안경과 수줍은 보조개가 그니에게는 없었다

닮은 꼴에 갖다 붙인 건 순전히 되바라진 욕심이 빚은 억지일수도

그니는 시를 사랑한 만큼 소주에도 마음을 뺏겼다

시에 취하고 소주에 젖었다

 

너나없이 소주에 의지해 괴성으로 자신을 기만하던 그 밤

그니는 헝클어진 머리 쓸어 올리며 물기 머금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입가엔 예전과 다른 한 조각 미소를 베어 물고

그니의 시선이 나를 향했을 때

그건 차라리 예리한 통증이었다.

말 없이도 삶의 구차함이 전해졌다.

아서라! 어느 누구의 삶에든 구차함은 있는 법이거늘

말하고 싶었다

위로해 주고 싶었다

손 내밀어 잡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손 내밀지 못했다

손보다 말보다 눈물이 먼저 나왔다

목이 메어서

가슴 시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차마 외면한 가슴 속에 소낙비가 쏟아졌다

해일 같은 아픔으로 사흘 낮 밤을 앓았다

 

이제 놓아주어야 하리라

상실을 아파하는 건 스스로 사랑을 욕되게 하는 것이기에

머리로만 아닌 가슴으로도 보내야 하리

하다 하다 안되면

주어서 행복했노라는 어느 싯귀 붙들고라도 아픈 눈물 삼켜야 하리라

 



5. 늦었을까?

 

내 나이 쉰두 살

기다림이란 사치려니 여기며 살았어.

굳이 안달하지 않아도

어김없이 오는 봄에 대한 생각이 그럴진대

가슴 속에만 있어

오마지 않은 인연이야 더 말할 게 없겠지.

 

대신

부르지 않은 삭막함이 한결 살가워지더군.

 

돌아보면

그닥 패기로웠다곤 못해도

내게도 젊음이란 게 있었어.

남들처럼

열병도 앓아봤고

가슴 녹는 이별도 겪었었지

! 그래

지난 것은 다 아름답다는 말도

또 다 부질없다는 말도

두어 번쯤 해 보았을 테고 말이야

그 시절은 빛 바랜 사진으로조차 남지 않았는데

성큼 앞서가는 세월은 회상조차 사치라며 지울 걸 강요하더군 

 

그런데

희망을 버리기에

아직은 좀 이른 모양이야.

강원도 어느 산골짝에 처박힌 70 늙은이가

요 근래 시침 뚝 따고 봄을 수배했더군.

이 얼마나 당당한가

다른 이름의 욕심에 버젓이 봄을 빙자하는 몰염치라니

 

그렇다 한들

내 비아냥은 많이도 어줍잖겠지

삶은 모르는 거니까

 

근데

참 우스운 건

어울릴 성 싶지 않을 그의 욕망으로

내가 희망의 끈을 다시 잡았다는 사실이야.

이제 다시 한번

삶을 사랑해 보고자 해

그리 늦은 건 아닐 거야

 

다른 건 몰라도

시간만큼은

그 보다 내게 더 많이 남아 있을 테니 말이지

 

 

 

 

6. 소녀

 

작은 키에 앳된 얼굴

하이힐과 붉은 립스틱으로 과장한

소녀를 만났다

 

21살이라고

그래

수줍음 대신 무언지 모를 슬픔을 담은

깊고 푸른 눈망울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

글로리아

너는

그렇게 어설퍼 보였다

 

어디서 배웠는가

건배 때 잔을 아래 쪽에 부딪고

안주 대신 입술을 탐했을 때

조심스레 립스틱을 지우던

너는

꽤 괜찮은 아이로 내 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낯 선 리듬에

박수 치며 까딱까딱 고개 질 할 때

흔들리던 한쪽만의 귀걸이는 

네 입가의 웃음같이도

무척이나 쓸쓸했었지

노래하는 내가 좋다며

등 뒤에서 나를 안았을 때

콩닥이던 가슴은

조금은 복잡한 심사를 전해

가슴 한 켠을 아리게 했었다

 

도도한 주흥은 이성마저 삼켰는가

소녀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가 얼마나 버거웠는지

나는 헤아리지 못했다

아니, 짧은 시간을 빌미 삼은 외면이었으리라

그만큼의 멍에쯤은 내게도 있을 것이기에

그것, 섣부른 연민이

되레 어줍잖은 위선이요 자가당착이었으리라는

뻔뻔한 변명이

스스로 역겹다

 

제법의 시간이 지난 지금

오래된 사진 꺼내보듯

소녀를 생각한다

버거운 삶의 멍에를 설운 미소로 애써 지우며

정작 시린 가슴으로도 따스한 사랑을 전하던

가녀린

그래서 더 애툿한

한 소녀를 추억한다




본명: 이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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