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공모- 검은 파도가 점점 차오를 때 외 5편

by 난란 posted Dec 10,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검은 파도가 점점 차오를 때

 

 

깊은 밤 검은 파도가 내 목까지 차오른다

발밑에서 찰랑거리던 검은 파도는 이제 나를 덮칠 듯 차올랐다

파도는 발버둥 치는 내가 우습게 느껴지는 듯 더 큰 파도를 몰고 왔다

처음부터 검은 파도는 아니었다

한 여름 바닷가처럼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모래를 가진 바다였고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진정되는 내 바다였다

낮에 뜨거운 모래를 한우 큼 집어 들 때면 뜨거움에 놀라 놓치기도 했지만

그 뜨거움이 좋아 집고 놓기를 반복했던 모래였다

남들이 내 바다를 보고 비웃을 때

그저 부러워서 그러는 것뿐이라며 나를 달랬고

그럴수록 나는 내 바다를 더 사랑했다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에 마음이 아팠지만

금세 두 손을 털고 일어나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는 나였다

그랬던 내 바다에 밤이 오기 시작했을 때

내 모래는 차가웠지만 여전히 빛나 내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고

푸르렀던 내 바다에 검은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는 썩어가기 시작했고

검은 파도는 빛나던 내 모래를 계속 쓸어가 버렸다

나는 도망치기 시작했고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어졌을 때

검은 파도는 기다렸다는 듯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 꿈을 간직했던 모래는 사라졌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던 푸른 바다는

이제 나를 삼키려고 한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거였다

 



당신의 골짜기 그 깊은 그리움을 꺼내다

 

당신의 주름과 주름 그 사이 깊은 골짜기에 숨겨진

당신과 나의 추억을 꺼내본다

당신과 내가 보낸 시간만큼 깊게도 패어있다

 

당신의 주름과 주름 그사이 더 깊은 골짜기에 숨겨진

당신이 홀로 보낸 수많은 밤들을 꺼내본다

당신에게 손을 흔들고 떠났던 그날 이후

당신은 내가 볼 수 없게 외로움을 참 깊게도 묻어놨다

당신의 수많은 밤들이 깊게 패여 내 마음 한구석을 아려오게 한다

 

내게 잘 지내고 있다며 걱정 말라던 전화기 넘어 당신의 목소리가

무심하게 나를 반기던 당신의 모습이

어색하게 건네던 당신의 인사가

이젠 내 주름과 주름 그 사이 아직 깊지 않은 내 골짜기에 새겨진다

 


 

길 고양이

 

장맛비가 내리면 차 밑으로

온 세상이 뜨거워지면 잔디위로

너를 여기저기 떠돌게 만들던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지독한 겨울이 왔다

 

내가 네게

여름을 버텨주어 고맙다고 말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제 시리도록 추운 겨울바람을 피해 넌 어디로 갈지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 눈을 피해 넌 어디로 갈지

 

너를 계속 보고 싶지만

네게 겨울을 버텨달라고 말하기 조심스럽다

이 지독한 겨울을 버티고 나면

또다시 여름이 오기에

내 고민이 깊어진다




곶감

 

겨울이 들어서기 시작하면

엄마는 시장에서 감을 사다 줄줄이 엮어

아파트 베란다에 곶감을 만들었다

 

시골 지붕 밑에서는 예쁘게 마르던 감들이

도시 베란다에서는 검게 변하며 말라갔다

결국 먹지도 못하고 버릴 거면서

엄마는 매년 감을 매달았다

 

시간이 흘러 내가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무렵

엄마가 겨울마다 매단 감들은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의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서였던 것이었다

 

 

 

눈 덮인 마을입구에서 널 기다리며

 

아침

떠지지 않은 눈을 감고 네 이름을 여러 번 부르다 눈을 뜬다

오늘따라 조용한 아침에 밤새 눈이 내렸음을 깨닫는다

오늘은 네가 돌아올까 생각하며 일어나 너를 마중하러 나간다

혹시 네가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린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아무도 밟지 않은 눈으로 내 발자국을 낸다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여 조용해진 마을 입구에서

네 발자국 소리가 들릴까

네 울음소리가 들릴까

귀를 기울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돌아가는 발자국에 네가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찍혀있는 내 발자국 따라 집으로 돌아간다

온 세상을 눈이 뒤덮으면 그때 떠나지 그랬냐

네 발자국을 따라 너를 찾으러 나도 갔을 텐데

 

 

  


생선가게

 

고무장갑을 벗은 다음

두꺼운 면장갑을 벗고

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은 손

앞치마에 박박 문지르고 건네는 돈을

엄지와 검지로 받는 상대방의 모습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장사가 끝나고

연거푸 손을 씻는 네 모습도

수시로 손 냄새를 맡는 네 모습도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네 생일날

꽃집에 들려 산 꽃다발을 손에 꼭 쥐고

아이처럼 좋아하던 네 모습이

꽃내음을 맡던 네 모습이

나는 너무 이상했다

그런 네 모습을 이상하게 본 내가 너무 이상해서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눈물을 흘렸다

 

 


<인적사항>

이름: 김난영

이메일: sostlsksdud@naver.com

전화번호: 010-7144-8066


Articles

81 82 83 84 85 86 87 88 89 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