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차 창작콘테스트 응모 5편

by 백동혁 posted Sep 0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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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곁에 있어주길 바라면 안 될까


오늘같이 무겁고 외로운 밤이 짓누르고 있을 때

무릎을 빌려주고 담요를 덮어줄 수 있는 사람이


내 눈이 온전히 감겨 편히 이 밤을 보낼 수 있도록

그것이 꼬박 밤을 새야하는 일이라도 견뎌줄 사람이


손가락을 들어 밤하늘의 별을 하나 둘 셈하다가

우연히 두 손가락이 닿아 얼굴이 발개질 사람이


나에게 그런 사람이 너이길 바라면 안 될까






「나는 가을이 되면 잠시 눈을 감는다」


매년, 밤의 찬 공기는 내게 가을임을 알리고,

나는 가을이 되면 잠시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모든 것을 지운다

그 까만 배경에 너를 그린다


처음 만났을 때의 너를 그린다

너의 얼굴 너의 표정

너의 옷가지 너의 손인사

다행이 아직 난 너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자 너의 향기가 나기 시작한다

머리카락 바람에 날리는 향기

품안에 안기는 따뜻한 향기

조금 서툴렀던 우리 사랑의 향기가 나기 시작한다


눈을 뜨면 네가 내 품 안일 것만 같다

하지만, 여기서 눈을 떠버리면

너는 다시 어두운 어딘가로 사라져

너를 점점 떠올리기 힘들 것만 같다


이대로 널 보고, 널 느끼고 있으니

꼭 감은 두 눈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살며시 눈물을 내리운다


그래, 이렇게 아직 난 너와 함께 있는 것이다

아직 나는 너와 이별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비록 우린 다시 만나기 어렵겠지만

다만 난 이렇게 너를 만나곤 한다

그 때 말 못한 이야기를 전하곤 한다

-가을이다, 부디 잘 지내라.






「늘 내 마음에는 별이 핀다」


널 바래다주고 돌아가는 하늘에는

늘 별 두 개가 떠있었다

하나는 나의 별 하나는 너의 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늘 내 마음에 별이 하나 핀다


가장 밝고 외롭고 그립게 빛나서

일부로 무엇인지 생각지 않아도

그게 너인 걸 느낄 수 있다


네 옆에 희미하게 별 하나가 더 있지 않을까

몇 번을 찾아봐도 나의 별은 이제 없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우리인적이 없이 남이 되었다

단연코 두 별은 하나가 될 수 없었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어찌 이렇게 가볍고도 무거운지

별 하나의 무게가 어찌 이렇게 아름답고 슬픈지






「향기」


1

서점에 들러 책 향기 맡으려하니

너의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공원에 앉아 잠시 눈을 감으니

너의 온기가 느껴졌다


돌아가는 동네 골목에도

묘연하게 비추는 가로등에도

이 편지에도, 내 마음에도

온통 너로 가득하다


너 없이 만들어 놓은 나의 일상에

너는 그 짧은 순간동안 은연히 스며들었다


2

빠르게 타오르는 불꽃은 빠르게 식어가고

은연히 스며들은 너는 은연중에 빠져간다


그 동안 내 옷가지에 스며들은

너와 나눈 향기가 점점 빠져나가

내 이 작은 두 손으로 허둥지둥 막아보다

결국, 울음이 터져 주저앉고 말았다


다시는 맡을 수 없는 그 향기가 잊히기 시작했다

기억하려고, 잊지 않으려고

사람들이 가장 많은 거리로 나가 네 향기를 찾기로 했다.

울먹이며 이리저리 뛰어다녀보아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네 향기 하나 찾기 어려운데

우리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사랑했을까


사랑하는 너의 향기는 마음에 남아 찾을 수 없다

마음속에 남은 향기는 맡을 수 없이 코끝이 시리다






「우리에게 사랑이란」


저녁 여덟시

너에게 식사라도 한 끼 사주기 위해

너에게 변변치 못한 선물이라도 하기 위해

나는 일터로 나간다


가진 것이라고는

건강한 몸밖에 없어

물건 나르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이리저리

물건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눈물 섞인 제육덮밥을 먹고 나서

다시 어두운 작업장에 들어간다


새벽 여섯시

어엿한 직장인들이 부지런한 학생들이

직장을 향하고 학교를 향할 때

교통비를 아끼려 자전거에 오른다


아침 아홉시

네가 일어날 시간

내겐 잠에 들 시간


오후 한시

일어나지 못한 나를

너는 하염없이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너에게 가난했다

너에게 나는 게을렀다

그것이 네가 날 떠난 이유였고

우리가 헤어진 까닭이었다


너에게 사랑이란

약속시간에 늦지 않는 부지런함이었고

나에게 사랑이란

무어라도 해주는 헌신이었으니


너도 나도

우린 결코 서로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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