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몫
작년에 떨어진 낙엽이
아직도 바닥에 남아있다
학살의 계절은 올해도
올 것일 터
작년에 죽은 잎과
올해 죽는 잎 그리고
내년에 죽을 잎을
시체 청소부가
치워주지 않는다면
쌓이고 쌓여 계절이
쌓여 나무를 모두 덮어
세상을 덮고 낙엽 덮인 지구는
영원한 가을.
정전
낮에 정전인 줄 모른 채
밤에 불을 킬 거라 생각했다
낮은 억지로 환한 세상이기 때문에
깨어서 부랴부랴 움직이는 사람들 따라
꿈척꿈척 몸을 꿈틀댔다
불은 껐지만,
어째 눈이 부셔 나는 눈을 감고 다녔다
밤이 되면 거꾸로,
되려 나는 불을 킬 텐데
아,
정전 일 줄이야
나는 눈을 뜨고 싶었지만 어두운 탓에
눈을 감았다
결국 나는 하루 동안 눈을 감은 채 살았다
성장통
반가운 통증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
중딩시절 나를 괴롭히던 친구
오랜만에 보니 반갑구나
'아픔 줄게 성장하렴'
모든 아픔들이 성장통이라면
나는 어디까지 성장할까.
매일이 고통스럽다는 아티스트는
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탈모인 A 씨는
매일 가야 할 집에 악마와 같이 사는 아이는
주중 가야 할 학교에 악마 새끼가 있는 왕따는
태어나자마자 굶주림에 시달리는 그 애들은
어린 생명의 불씨를 아슬아슬하게 지키는 그들은
...
고통받는 사람들
그러나
성장하지 못하는 아이들
성장을 주는 고통
하지만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
도시 산책
나를 들여 준 도심 속
네거리 정류장에 서서
나를 도심 밖으로 보내 줄
습기 차 있을 버스를 기다린다
목적지에 나를 던져놓을 버스
오늘은 중간에 내려 던져지지 않는다
조용히 도시를 걷는다
안개비를 온몸으로 마시며
아파트 숲을 거닌다
조용한 변두리의 아파트 숲
아스팔트가 웃었는지
미소에 깊이 팬 볼우물에
빗물이 찰랑찰랑 고인다
나는 빗물을 머금은 아스팔트 위를
지그재그로 피하며
아스팔트의 미소에 빠지지 않는다
주택가 좁은 모세혈관들 사이를 지나
시나브로 피어나는 투명함 섞인 풀 내음
천천히 음미하며 한 걸음씩 뗀다
분무기를 뿌리는듯한 비는 뇌를 적시고
젖은 생각은 감성 무지개를 띄운다
주택가 내리막길 위에서 똑바로 바라보면
어느새 저곳까지 밀려온 아파트 파도
파도를 피해 선장은 키를 돌려
뱃머리는 위를 향한다
숲 속으로
숲의 끝자락에 아이들이 있다
낚싯대 바늘은 올가미 모양
지붕 위에 앉아 낚시하면
고기야 고기야 낚여라 하고
순진무구한 얼굴로 흥얼거리는 아이야
숲의 변두리에 아이들이 옅은 숨
을 내쉬어 들키면 안 되지
더 작게 내쉬어 지붕 아래 그늘에
숨어 쪼그려 앉은 아이야, 아이는
길고 긴 장마철 먹구름이 머리 위에 자리 잡았다
숲의 새끼발톱 아직 깎이지 않은 아이들
차라리 내가 스스로 날아가
다짐한 아이야 방향은 잃고
비행기는 추락했지만 방황하지 마
배회하지 마 다시 돌아와 한번 더 날아가
숲의 안내판은 숲 속에만 있다
이정표가 없으면 꼼짝 못하고 서 있고
길이 끊기면 가던 길을 멈춰 서 있고
언제나 그렇듯 언제까지 그러고 서 있을 거야
숲으로 가는 이정표는 없지만 몇 걸음 앞에 숲이 있네
숲 속으로 가려는 아이가 있다
눈을 감으면 울창한 숲이 유혹하듯 아른거리고
귀를 기울이면 방울뱀의 방울소리가 아려오는데
하얀 도화지 위에 감각을 그리기도 좋지만
액자에 걸린 누군가가 완성한 그림을 보고 싶어
숲이 허락해주길 나에게 신호를 보내주길
기다린 아이야
잔잔한 평화 품으로 휘몰아치는 변화가
너의 기다림을 끝마쳐주는구나!
숲 속으로 숲 속으로
웅장한 바람 연주 더 해주오
숲 속으로 숲 속으로
더 힘차게 노를 저어 밀어주오
숲 속으로 숲 속으로
숲의 대장 가장 큰 나무님 나를 끌어당겨 안아주오
숲 밖에서 숲 속으로
숲 속으로 숲 속으로
시선의 절정 긴장의 최고조
숲 속으로 숲 속으로
숲 속으로 이제는
숲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