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
홀로 깨어난 새벽
낡은 거울에 비치는 얼굴
그 모진 비탈길에
떨어져 내리는 볕
숨을 팔아 채운 술잔에
밤을 지새고
다른 이의 언어로
산만한 정신
지난밤에 물이 든
먹구름처럼
이제야 쏟아내는
상스러운 물줄기
아아,
마를날 없는 가슴
폐부 가득
녹이 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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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을 기다리는 시
이 밤이 마르기 전에
손에 쥔 것들에
온 힘을 다하자
손끝에 스며드는 밤공기
마치 흘러내리듯
쓰여지는 시
발밑에 고인 여럿 글자들
들숨과 날숨에 그득한
사랑과 위로
별과 시, 숨조차 번지는
어느 새벽에 올라
오래된 전신주처럼
노을을 기다리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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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
끊어지다만 고무줄처럼
늘리다만 삶이었다
숨이 다하는 날까지
안고 싶었던 것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어색한 몸짓으로
스스로를 감싸 안으며
원래 내 품이
이정도였구나 싶다
정작 본인은
한 번 안겨보지 못한
넝마가 된 품에
남은 게 있다면
그을린 손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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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비가 내리는 창을 보고 있으면,
도시의 설움을 보는 것 같다
얼룩진 빌딩 사이로 물방울이 맺히고,
그리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하늘이
색깔 없이 섞여 있더라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설움에는 내가 있더라
도시에 흐르는 빗물이
나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래서일까?
몸은 젖지 않았지만,
물기 어린 손과 발
나는 도시의 설움에
이미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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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내음
내 눈물 짜게 만들던
바다야말로 슬픔의 중추
대양에서 건져올린
죽은 별들의 고함 흩뿌려질때
비로소야 파도가 친다
해안가에 떠밀려온 것들
그것들로 쌓아 올리는 탑
그 슬픔 견고하지 못해
나는 무너짐을 쌓고 있다
이윽고 노을이 밀려오면
나는 황혼에 부서진다
조각난 숨 일거에 떨어지면
나 역시 파도에 실려
바다에는 짠내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