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회>
김태헌
내가 너를 잠에 들지 못하게 괴롭혔듯
이젠 네가 새벽에 나를 찾아 온다
너만 없는 거리에서
너를 애타게 찾다
식은 땀으로 눈을 뜬다
비 내려 웅덩이에 고인 물이
말라 없어지고 모래만 반짝이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도
너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그 순간에 서 있는 것인가
지금도 진심인 것인가
내가 헤매어 찾는 것은
너인지 추억인지
어두운 방 한 켠에 눌러 앉아
소회를 밝히다
<비>
김태헌
밤이 지나야 아침이 오고,
밤이 있어 작은 별들도 빛이 난다
눈 앞의 비를 보지 말고
그 뒤의 맑음을 보아라
허탈과 무력감에 휩싸이며 절망할 때,
오히려 비를 더 맞으며 뛰어라
승리를 맛볼 대가를 치러라
울어도 좋다.
땅을 치며 세상을 원망하고 욕해도 좋다.
다만,
울다 지쳐 잠들지는 마라.
흘렸던 눈물로 반드시 무지개를 만들어 보여라.
결국은 너의 승리임을 증명해 보여라.
<나무>
김태헌
비가 오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너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당연한 너의 그늘
그 밑에서 새로움 없이
너의 지루한 침묵과 시간을 보내다가,
뚝.
네가
비를 버티다 못해
내 머리 위로 떨어진
그의 굵직한 땀 한 방울.
아,
너는 나를 위해
항상 그렇게 노력하고 있었구나.
<선풍기>
김태헌
같은 일을 하루 종일 하더라도
쉬지 않고 열심히 사는 내가 되기를.
내가 뜨거워지더라도
당신에겐 시원한 존재가 되기를.
계속 반복되며 돌아가는 삶 속에서도,
그 바쁜 순간 속에서도,
항상 한 번씩은 당신을 꼭 보고 돌아감을 눈치채 주기를.
혹여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할 때에는,
고정되어 당신만 바라보며 짐을 덜어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기꺼이 되어줄 수 있음을 알아주기를.
<이별>
김태헌
이별 또한 하나의 중독인가
사람들은
이별 없인 못 사는 것 같다.
이별을 그렇게나 죽도록 하고 싶어 한다.
이별을 하기 위해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고,
그 마음을 확인하며 이별이 시작된다.
이별을 하는 법은 다양하다.
상대방을 매일 생각하거나,
졸졸 쫓아다니거나,
미친 듯이 그 사람을 원하면 된다.
사람들은
이별까지의 여정이 너무 좋아서,
끝이 어떤지 알면서도 이별을 시작한다.
그래도 이별까지의 여정이란 말은 너무 길어서,
그래서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