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葬(닭장)
출근길
나의 병아리가 죽었다
계분을 쭉쭉 빨아먹던 건장한 소나무 밑에 장례를 치렀다
솔방울 하나 내어주지 않고 곧게 뻗어나간 기세등등한 뿌리, 그 뿌리에 주렁주렁 알이 달리었다
품지 못한 못다한 꿈인가
품에 안기지 못한 못다한 꿈이던가
서로를 품지 못한 욕망이 깨져 흐르는 알끈은 분리되지 않는 모순의 잔류물
아직 분해되지 못한 비린 *인류세(人類世)의 아픔을 덮고 덮어 걸어남기는 족적
'차라리 나 홀로'
깨진 껍질 위 비뚤어진 부리로 뒤틀린 역사를 층층이 새겨놓는다
무덤 앞
연민과 두려움의 경계에 *마니차 돌리는 소리인 듯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인 듯 요란하다
익숙한 애도의 눈물 뒤
소나무 뿌리 위로 돋아난 깃을 꺾어 오늘도 허기진 배를 채운다
눈 먼 저녁 퇴근길
뻐근해진 어깨와 저린 두 팔을 휘휘 저으며 바라본 고층 빌딩 꼭대기
회색빛 하늘 아래 초승달을 쥔 천장사(天葬師)의 칼날이 번뜩인다
공간에 촘촘히 박힌 좁은 창문들, 그 사이로 새어나오는 형광빛을 뚫고
되돌아 날아오는 독수리 날갯짓에 닭살이 돋는다
*인류세(Anthropocene, 人類世) : 인류가 지구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켜 만들어진 새로운 지질시대. 지구환경과 맞서 싸우게 된 시대를 뜻함.
*마니차(摩尼車) : 불교 경전을 넣은 경통. 마니차를 한 바퀴 돌릴 때마다 죄업이 하나씩 없어진다고 믿음.
발바닥에 아침이 묻었다
하얀병동을 절뚝거리던 비둘기
파선한 방주(方舟)를 둥글게 말아 경계를 굴러 발바닥에 박혔다
쿵쿵 두드리며
아침을 잃은 새의 부리가 가슴을 쪼아댄다
지난 밤 심장에 박혀 빛나던 그대가
꿈을 두드려
흐드러지게 떨어졌다
오랜동안 깊은 수면에 잠들었던
담담한 가지많은 심장이 떨리는 밤을 뚫고 솟아올랐다
먹먹한 가슴의 여백을 채우는 새하얀 그리움
귓가를 때리는 박동은 숨길 수 없는 지진(地震)난 그림자
괜찮다 꾹꾹 밟아 움푹 패여버린 어둠의 자리
선홍한 눈물이 고여 따끔한 수혈로 가지를 이룬다
그대가 박힌 가슴엔 해가 없어 자라지 않는가
잎사귀 하나 달리지 않은 허공에 꺾인 숨결이 차갑다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고싶은 초탈한 노마드는 현실의 꿈일 뿐
부여잡던 이상이 바닥을 향한다
더는 내려 갈길 없이 갈라진 지면에 디딘 기억
균열된 틈사이로 눈이 마주한 그대와의 추억에
뻗어나간 가지 위 알알이 달린 꽃망울이 각혈을 토해낸다
눈을 뜨니 새하얀 아침이다
선홍한 꽃가지를 입에 문 새의 부리가 빛난다
오목한 발바닥에 태양이 솟아오르는가
나의 발바닥에도 아침이 묻어있다
백년초 여인
여린 속내를 단단한 껍질로 무장한 가시돋힌 손바닥
얼키고 설킨 어머니 손금에 핏멍울이 줄줄이 달리었다
서로를 비추는 요지경 세계를 따라 돌리는 핸들에
달빛 어린 노란 꽃잎들이 후두둑 떨어지고
꿈 많던 소녀의 솜털은 추억이 되어 교통정보에 박히었다
서늘한 쓰라림이 외로움을 개워내고
단단한 껍질이 제자리를 잃을지라도
도로 위 터져 번지는 붉은 누흔(淚痕)들을
위로하고 닦아내는 신성한 여인
쓰린 속내를 포장한 가시돋힌 혓바닥에
오돌도돌해진 입속이 아려오면
-나는 괜찮다
툭 내뱉는 외 마디
수 없이 증식해가는 가지들을 낳고 또 낳아도
매번 피고 지는 웃음꽃에 주렁주렁 달린 양식은 태양 보다 붉게 터져나온다
메마른 생의 한가운데
끈적한 어머니의 속내가 드러나는 때면
-미안
다음을 잇지 못하고 허공에 뜬 못다한 말
혓바닥에 돋아난 핏멍울만 비릿하게 터져나온다
어머니의 교각(橋脚)
모성(母性)의 도로 위
끈적하게 녹아내린 아스팔트를 물렁한 연골에 굳혀 단단해진 교각의 어머니
이탈한 몸의 조각들을 둥글게 말아 초월한 의지로 매일을 바쁘게 달린다
마모 된 두 바퀴는 쉴세 없이 굴러 궤도를 이탈하고
파열 된 상처는 쓸려진 생애의 고뇌를 흐르는 곳에 놓아 둔채 재촉하는 귀가길
새벽 어스름
발끝 세운 반 걸음
발꿈치 닿은 반 걸음에
빼곡히 박힌 싸라기별 상흔의 밑창을 핥아
타-아닥 탁-아닥 절름대며 부엌 한 켠에 묵직한 발걸음으로 떨어져 내린다
떨어진 별을 촤락촤락 씻어
이는 거품 걷어 내면
맑은 물비늘 아래 반짝이는 몽돌들
안데스 산맥을 업고 등결에 찍혀 주름진 물결에 어머니의 몽돌이 박혀있다
수 없이 깎기고 갈려 둥글어진 인생에 태평양을 잇는 어머니의 교각이 빛난다
빼내어도 다시 차오르는 밀물의 활액에 쌓인 퇴적은 청정한 양식
펠리칸이 교각에 앉아 부리로 가슴을 찢고 살과 피를 어린 것에게 내어주는 모성의 양식이다
달그락 달그락
둥근 것과 각진 것들을 달래가며
차린 밥상 위에 올라온 유독 짜고 비린 콩자반
깡마른 젓가락으로 한 알 집어 씹는다. 물컹, 무릎이 시큰거려온다
부어오른 숟가락으로 한 큰 술 떠 씹어 삼킨다. 울컥, 어머니의 활액이 눈에 밀물 처럼 차오른다
무이낙-죽지 않는 바다
볼록한 설산(雪山)의 젖줄기가 끊어졌다
부러질 듯 갸냘픈 젖이 자성(磁性)을 잃고
모유를 찾지 못한 마른 뼈의 앙상한 어린 것들은
자지러지게 울다 겨우 잠이 들었다
두 다리를 잃고 부식 되어가는 존재들의 아우성에
무이낙은 사막이 된 밑바닥을 젓고 또 젓다가
꼬들꼬들 말라 비틀어진 해초의 녹루(綠淚)를 찾아 상처를 진공하지만
좌절한 항해의 자침은 파르르 떨다가 결국 모래 무덤에 묻혀버렸다
바다의 노마드는 현실이 더 낯선 액자에 끼워진 틀이 되고
해방의 곡선을 유영하던 각이 없는 유목민들의 터전에 족적이 남았다
했었노라는 빛바란 과거의 풍문은 골조만 남은 철갑에 대한 모독
캐비아를 삼켜 새까맣게 멍든 조개들의 묵직한 어둠 속 침묵은
사석지지 달빛 물결이 파랑이 되어 항해하는 꿈
푸른 별이 탐욕을 해감하고 란(卵)을 잉태하는 희망이다
종말 아닌 현전의 숨이 훅 불어온다
돛대 끝 자성의 깃발이
출항의 뱃고동 소리에 진동한 자침이 파르르 떨려온다
이름: 박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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