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회 창작 콘테스트 시 부문 공모-죽부인 외 4편

by 이삐삐님 posted Feb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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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부인

 

난 여자가 있는데

은은한 향기로 유혹하는 노골적 그녀

 

눈을 뗄 수 없는 매끈한 몸매

자꾸만 손이 가는 부드러운 살결

 

한껏 달아오른 날

더욱더 간절해

끝내 참을 수 없어

온몸을 채운 뜨거운 정열은 그녀만의 것

조강지처 따윈 밀어내고

그녀를 부인을 삼아

 

우리의 호흡은 세상없는 무아지경

느껴 본 적 없는 쾌락의 최고조

깊숙이 품어진 한 여름의 체위

하나 되어 나뒹구는 둘만의 별천지

잊을 수없는 감각이 흐르는 블루 파라다이스

 

누구로든 채워지는 고독이건만

그 여름의 그리움은 오직 그녀만이 머금을 극치

뜨거운 여름 뻔뻔히 다시 찾은 그녀를 권봉(權奉) 한다.

 

권봉 (權奉)

[명사] 어쩔 수 없이 받듦.



냉장고 전쟁

 

소리 없는 전쟁

그 문을 열기 두렵다.

 

쿰쿰한 시취

썩은 멸치 대가리의 무덤

허옇게 질린 묵은지의 아연실색

수줍게 홍조 띤 사과의 풋풋함은 껍데기뿐

칼앞에 그 속은 시커멓다.

그나마 탱탱한 가지 밑으로

백세는 된듯한 상추의 쭈글함이 씁쓸하다.

 

지층처럼 켜켜이 쌓인 퇴적물아래

알 수 없는 괴생명체의 움트림 포착

검정 비닐 폭탄 투하

무섭도록 검푸른 생화학 공격

버텨낼 재간이 없지.

 

피어오르고 새어난 것들은

모두 시궁창으로 엎드려뻗쳐!

 

소리 없는 전쟁터에도

다시금 신선하고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겠지.

퀴퀴한 썩은 것들은 버려지고

힘차게 전진하는 모터 탱크 앞장 세워

이번엔 죽지 마라.

전우들이여!


눈의 결백

 

누구보다 순결할 것 같았지만

세상의 미진(微塵)이 곳곳으로 묻혀진 전신

 

가장 따뜻해 보였지만

무엇보다 차가웠던 날카로운 첫 키스

 

솜사탕처럼 부드러웠던 순간은

이내 딱딱해 지고

가벼울 것만 같던 기대는

무거운 짐으로 변해버린 체증

 

불가해한 희대의 악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의 극치

감실감실 속내를 드러내다

거짓말 같은 시간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리번두리번

돌아보니 사실은 처음 생각 그대로였다.

단지 시간이 달랐을 뿐

 

그녀의 잘못은 일도 없고

내안의 편견이 잘못의 백이다.

 

* 미진4 (微塵)

[명사]

1. 아주 작은 티끌이나 먼지.

2. 작고 변변치 못한 물건.


새해

 

차가운 공기

나를 깨우고

드디어 세상을 맞이할 차비를 마친다.

 

제야의 종소리 나를 부르면

드디어 세상과 만날 테다.

 

나를 기다린 수많은 사람들

어두운 밤을 뚫고 동으로 동으로

조금 더 가까운 나를 찾은 어려운 여정

조금 더 천천히 무엇보다 찬란한 광명으로 보답하리라.

 

이윽고 설레이는 마음

짙게 붉어진 얼굴과 심장으로

그들 앞에 나를 보이고

천지를 흔드는 탄성과 환호는 귓전으로 타올라

그들의 소원들이 나를 소원한다.

 

이제껏 버텨온 고된 시간의 피로가 가시는 최고의 선물.

그들에게 내가 그러하듯 그들도 내게 그러하다.

 

이날만을 위해 간직해온 나의 사랑과 순수 그리고 열정으로

더 많은 이들의 가슴에 시작의 각인이 되리라.


자해중독자의 고백

 

조여오는 어둠

그곳은 황홀한 블랙홀

심장은 부지불식간 생기 없는 드라이플라워

희미해져 가는 산소 포화도

피어오르는 안개는 환각의 판타지

 

절망의 쾌락

어쩌지 못할 자해의 노예

중독의 늪

 

사회적 생존과 스펙에 목을 매나

질끈 조인 넥타이로 목을 매나

시나브로 죽어가긴 매한가지 매듭법

 

일그러진 거울 속 자화상만이

살아갈 용기의 유일한 원천

내생이 내 것이라는 유일한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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