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회 창작 콘테스트 시 부문 공모 - 육체와 이불의 상관관계 외 4편

by 에뷔테른 posted Feb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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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와 이불의 상관관계


사내의 비틀대는 몸뚱아리

이불은 연고를 모른다

그저 찬물에 데쳐낸 속살이

눈물을 이겨내고 잠에 들 때까지

별이 지고 닭이 울 때까지만

살짜기 덥혀 줄 뿐이다


실크이불의 노오랗게 뜬 고독

육체는 연고를 모른다

그저 차갑게 식은 방바닥에

부대껴 열이 오를 때까지

달이 지고 해가 뜰 때까지만

살짜기 곁에 있을 뿐이다


이불

자네 그것 아느냐고

오늘 하루 바짝 벌었으니

내일은 서울 보낸 우리 딸래미

삼삼한 원피스 하나 사줄 수 있다고


그러냐고

옥탑방 한나절 외롭도록

방바닥 덥히고 있어도 이 밤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어 좋다고


고단함 쉬어가는 새벽

흐드러진 별꽃밭보다 아름다운 것은

서로를 끌어 보듬는

한 순간의 쪽잠




앙코르

 

조간신문에는

졸음운전 삼중 추돌사고 소식

 

수험생 아들과

사회 새내기 딸을 태운

단란한 행복에

커튼이 짙게 드리우고

 

누구의 탓과

누구의 몫

타원을 그리며 도는

뫼비우스의 실랑이 속에

 

모두가 속삭이는

앙코르

 

·

 

오늘의 헤드라인

모 군과 모양의 핑크빛 열애설

 

부와 명예보다

관심을 쫓는 이들의

농간 너머로

낄낄거림이 오가고

 

어울린다 헤어져라

축복과 원망이 어우러지며

아무도 모르게 묻혔을

아무개의 비명 뒤에

 

모두가 내뱉는

앙코르

 

·

 

동시간대 시청률 1

소년소녀 가장의 일상 다큐

 

이례적 결과

살 만한 세상의 반증

악마들의 호평이

길게 늘어서고

 

모금 캠페인과 자원봉사

행복한 세계를 만들자는

허울 좋은 피노키오들의 수다

그 너머로

 

모두가 외치는

앙코르




백짓장

 

외줄을 탄다고 곡예사는 아니었다

생명선을 넘나들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고

아래를 곧게 쳐다볼 순 없었다

 

사회가 무서워 올라탄

운명의 케이블

사람이 무서워 크게 켜둔

오롯한 벗 라디오

 

노을을 볼 즈음엔 늘 움츠렸던

두 날개 높이 들어

내일로 비상하던 가냘픈 미소 뒤엔

아롱이는 열 눈망울

촉촉이 스며있었다

 

구름도 춤을 추던 그 날

광대짓을 앙망하던 어린 손짓에

세상과 맞싸우던 날개는

다 자라지 못한 참나무 가지가 되고 말았다

지구를 받쳐주던 케이블은

썩은 동아줄이 되고 말았다

 

하늘과 멀어지며

차마 느끼지도 못했을 북받침

차마 떠올릴 수도 없었을

우수에 찬 눈빛들

 

외다리로는 설 수 없던 바리게이트여

맞들지 못해 무너져 내린

희고 고운 굳은 살이여!

 

땅을 보고 울어라

한 발을 빗겨 디딜 곳마저 빗금을 그어 두고

울지 않는 나라를 향해

서글픈 고함을 질러라

 



부종

 

물사마귀는 아버지 등 위에

흘려보낸 세월의

상흔을 새겼다

누구보다 강하던 사람

 

증기기관차가 터널을 주파하듯

병마와 추돌한 그는

오늘마저 힘겹게

내일로 넘기며

가물거리는 숨을 붙잡고 있었다

 

드넓던 어깨

두툼턴 몸집

홀몸으로 갈대밭을 헤치던 사람

이제는 간 곳 없이

뼈마디만 멈춘 채

고개를 힘대로 가로젓나니

 

삐걱이는 손사래를 관통하는

그 시절 그의 눈물

이제는 닦아드리기도 수줍어

내내 숨던 수치의 손등

 

한없던 외줄의 곡예가

잔잔한 직선으로 막을 내릴 때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어깨

 

가팔랐던 등산길 아래로

모든 짐 훨훨 털며

下山하는

아버지 어깨 위에 내려앉은

부종




스마트


달력이 아니라 캘린더다

종이의 촉감도, 문선공의 영혼도 느낄 수 없는

손 안에 번쩍이는 그것은

달력이 아니라 캘린더라 한다더라


달력 아닌 캘린더를 보고난 그는

아무도 들리지 않게 탄식을 했어


알아야 할 것을 모를 때 느끼는 섬짓함

그는 그런 걸 느끼고 있었나봐

다 지나가버린 오늘은 아버지 생신이고

어제는 할머니 일곱번째 기일이었지


그는 상념에 잠긴 채

우울이라 부르기 민망한 눈동자를 치켜뜨고

앉아있던 벤치에 다시 주저앉았어


달력 아닌 캘린더는 말이 없지

그는 잠시 아쉬워하지만

그것이 영원인 듯이 믿어버렸고


홍수같은 미디어 속에서

매몰되지 않고 살아남은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눌러

그녀의 이름 옆에 놓인

흑백꽃 한 떨기를 흘겨보고 나서야

그는 떨던 다리를 고쳐앉았지


사람이 죽어 남긴 것은 이름

이름

이름 뿐

네가 떠나고 남은 너의 그림자는

여운만 길게 늘어뜨렸기에


그는 피식거렸으며

씁쓸함을 후식으로 씹고 있었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늘 그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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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사항>

-이름 : 권민규

-이메일 : kmg4749@naver.com

-연락처 : 010-9922-4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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