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녘
빛 잃은 하늘 아래 산 빛마저 감잎으로 물들어 갈 때
내 마음은
찬 기운에 버티는 나뭇잎 보다도
더 애처롭게 흔들리고 버티고
주말 농장 작은 땅 배추 사이로
물 뿌리는 아저씨의 정성스런 손길에선
삶의 여유가 줄줄 흘러나와
비었던 배추 속을 꽉 차게 영글이고
밭가에 과꽃은 핀지 오래 마르는데
소리 없이 기우는 해처럼
소리 없이 고여 드는 그리움에
허술한 농가마저 산그늘에 잠기겠네
좁다란 길 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는
이별 앞 둔 내 눈처럼 바람 속에 하롱대는데
국화꽃은 등불처럼 피어날 듯 설레이고
낮에 쓰던 물조리는 나란히나란히 다정키도 하여라.
아아, 산다는 게 하루 해 같은 걸
무엇이 아쉽고
무엇이 그립다고
해지는 산자락에 걸릴 게 그 무어라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 내 마음은 매이는가!
이토록 매이는가!
들국화
사는 동안
한 순간이라도
활짝 피어본 적 있었다면
사는 동안
한 순간이라도
눈부시게 찬란한 적 있었다면
사는 동안
한 순간이라도
아낌없이 웃어준 적 있었다면
사는 동안
한 순간이라도
갈라진 꽃잎처럼 애달픈 적 있었다면
사는 동안
한 순간이라도
연보라색 그리움이 영혼 깊이 스몄다면
나 헛되이 산 것은 아니리
꽃이 지면 열매 맺듯
지난 사랑은 그리움을 열매 맺고
그리움은 씨앗 되어 다음 생에 뿌려지리니.
지금 사는
이 생이 헛된 것은 아니리.
영원한 만남 위한 잠깐의 이별일 뿐
나 헛되이 사랑한 거 아니리.
삼키는 말
보고 싶다 말하면
더 보고플까봐
그리웁다 말하면
더 그리울까봐
꿀꺽! 물 한 모금 삼키듯
그 말들을 삼켜 보았다.
삼켜도 삼켜도 고이는 침처럼
메아리로 되돌아 오는 내 영혼이 하는 말.
보고 싶다. 마냥 보고 싶다.
그리웁다. 마냥 그리웁다.
꼭 다문 입술 사이로 마음 흘러 나온다.
흘러 나온 마음을 눈물이 훔친다.
그리움
아직도 때때로 그대 그리워
내 발끝
내 손끝
내 눈길 머무는 곳마다
그대와 맞닿아 있네.
잊었노라, 이제 잊었노라
안심하며 내 눈길 멀리 보냈는데
제 자리 돌아오는 짧은 눈길 안에
끈끈히 엉켜 붙는 고된 그리움
그리움이 없는 삶에 무슨 생기 있냐고
세월에 부서지는 산기슭 고목처럼
한 때 푸르게 살았노라 추억한들
무슨 소용 있냐고.
사랑은
그리움의 긴 그림자 속에
고이 묻히고
영혼을 사르는 그리움의 끝
깃발처럼 나부끼는 바람 속에서도
내가 부를 한 사람,
그대여~
나는 외로운 게 아니라
그저 당신이 그리운 겁니다.
빠지다
사랑에 빠지다.
그 말을 가만히 생각해 봐요.
왜 빠지다 라고 표현했을까?
늪에 빠지다.
함정에 빠지다.
빠지다는 이럴 때 쓰는 말인데
.
.
.
한 발 한 발 내딛을수록 더 깊은 늪에 빠지듯
헤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 깊은 함정에 빠지듯
거부하면 할수록 깊어지던 사랑.
그렇군요!
의지와는 상관없이 빠져 버리고
의지와는 반대로 더 깊이 들어 가는 것.
난 사랑에 빠져 버렸어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히려 반대로
그러니 날보고 뭐라 하지 말아요.
난들 어쩌겠어요!
성명: 김 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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