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회 창작 콘테스트 시 부문 공모 - 마스크 외 4편

by 백합향 posted Feb 10,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마스크]

눈만 들어낸
의심의 눈길
거리 활보한다

정체 모를 주둥이들
둥둥 떠다니며
스마트폰 속 헤집어
물컹한 곳에 신종 사기 박는다

고객님께서 결재하신 러닝머신이
오늘 배달될 예정입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물건
이름 없는 천사가 기부라도 했단 말인가

미치고 환장하겠다는 고객의 전화
기다렸다는 듯 마스크 바꿔 쓰고
말캉한 목소리에 기름칠까지 해대며
해결책 들이밀어 피 같은 돈 뽑아낸다

언론이 뿌려대어
부풀 대로 부푼 바이러스 보도에
수없이 양산된 팔다리 잘린 핀둥이들
마냥 버둥댄다

정기서린 눈빛에
허연 수염 쓰다듬는 할아버지
와이셔츠든 메리야스든 코코나든
정신상태의 면역만 살아 있으면
겁낼 것 하나 없다

여린 새가슴들 웅성대며
여전히 불안에 휩싸여 두려움에 떨고 있고
관공서도 한쪽 귀퉁이에 암막 커튼 쳐
얼굴 가리고 있다.

 


[시식 코너에서]

, 크다
외마디 내지르며
만두에
이쑤시게 쿡 찌른다

통째로 먹으려던 순간
목소리에 묻어난
따가운 눈총

순식간에
주변 시선들이
만두에 가 꽂힌다

이쑤시게 뽑기 무섭게
난도질 당한 만두
한입에 먹고픈 식욕이
저 멀리 달아나 버린다

시식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처음부터 잘라 놓을 일이지
푸념 자락으로
부끄러운 뒷꼭지 덮은 뒤
신포도 씹어대며 돌아선다.



 

[장보기]

매번 선택의 기로에 선다
봉지면 내려놓고
쌀국수 컵면에 손이 간다

하루쯤 달달함에 기대어
맘껏 위로 받고 싶어
손발이 분주하다

구릿빛 반지르한 근육질에
흰 이 드러낸 크림 파이에
눈길 떼지 못한다

고소한 국민 스낵
커피의 단짝 비스켓도
들썽거리고

손가락에 끼워
쏙쏙 빼먹던 추억까지
살갑게 따라붙어

발목 붙드는 바람에
벌써 몇 바퀴째
돌고 돈다

그래도 든든함이 최고라며
통밀 함량 2배 자랑하는
뚝배기 같이 투박한 마음결
덥썩 손잡는다

바구니 속
오징어와 버섯과 사리 곰탕은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생소한 조합에
뚱한 표정으로 멀뚱히 올려다보고 있다.

 

 

 

[야경이 아름다운 건]

낮의 소란함 숨긴 채
실루엣만으로 서 있기 때문

주머니 속 맞잡은 손처럼
낮의 손끝 포근히
감싸 쥐고 있기 때문

뫼비우스 띠
따라 걷는 호수 공원
놓을 수 없는 숨결
아직도 거기 있기 때문

물속 제 모습 응시하던 가로등
마실 나온 불빛들 맞이할 때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기 때문

 

 

 

[책이 음식이라면]

다잡은 마음으로 도서관문 열면
수없이 많은 책들이 달려들지만
딱히 마음 끄는 책 한 권 없다

제목부터
밍밍하고 식상하다

상상의 나래 펼친다
맛이 간 책,
벌써 다 맛본 책,
침이 마르도록 찬사 퍼부었을 책,
최소한 그런 책 앞에서는
건방떠는 일 만큼은 없을 텐데

맛이 좀 없더라도 먹을 만한 책
너무 오래 먹은 탓에
조금은 식상한 책,
그래도 뭔 상관이야
서로 바꿔 먹으며 될 텐데

여전히 영양가 높은 책,
콜라처럼 톡 쏘는 맛을 내는 책,
인스턴트 맛을 내어 잘 팔리는 책,
길거리에서도 먹을 수 있는 작은 책,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심심할 땐
언제든 씹어댈 수 있는 책,
학창시절에 먹어본 불량한 맛의 책

책이 음식이라면
난 누구보다 더 생각이 깊어지고
멋지게 변할 텐데.

 

 

 

 

이름: 서희정

메일: actor5137@daum.net

전화: 010-5137-1335

Who's 백합향

?

서희정


Articles

6 7 8 9 10 11 12 13 1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