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회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 머물다 외 4편

by 그럴수도 posted Apr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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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다

 

정처 없이 걷고 있다.

아무 관계없는 이가 나를 본다.

신경 쓰지 않는다. 관심 없다.

 

그가 나를 불러 세운다.

두 귀가 움찔거리고

두 발은 멈칫거린다.

가야 한다. 걸어야 한다.

 

나에게 나뭇잎을 건넨다.

내 손 위로 향기가 옮겨붙는다.

이러면 멈출 수밖에...

 

난 가만히 나뭇잎을 바라보며 서 있다.

그는 자꾸 내 귀에 말을 붙인다.

별것 아닌 말이, 그 자리에 내 두 발이

머무르게 한다.

 

 

초록이다가, 노랗다

 

그늘진 나무 아래

초록 바람은 그저 싱그럽다.

바람 따라  내 머리칼을 넘긴다.

 

바람이 멈추면

가만히 나뭇잎을 만지작거린다.

매끈한 것, 까슬거리는 것, 살짝 뜯겨져 나간 것

모두 선명한 초록색이다.

 

다시 바람이 분다.

초록 잎은 점점 말라간다.

말라가는 내 입술에 손을 가져간다.

 

바싹 마른 잎이 모두 떨어지고

나무를 올려다봤다.

이제 노란색이다. 노란 열매가 보인다.

 

노란 것이 살포시 흔들린다.

혹여나 바닥으로 떨어질까 싶어

나무에 올라타 열매를 지켜본다.

 

바람은 사라졌다.

 

굳게 닫힌 저 문을 너와

하얀 연기만 자욱한 그곳을 너와

어두운 빛만 있는 곳을 너와

함께 들어가 보려고 했다.

 

너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저 깜깜한 낮일 뿐인데

너는 추워했다.

 

준비해온 성냥과 촛불을 꺼내었다.

불을 밝히면 더 이상 떨지 않을 테니

탁탁 소리에 비해 불빛은 한없이 조그맣다.

 

나는 너에게 촛불을 손에 쥐여줬다.

그리고 나는 너의 손을 꼭 잡았다.

 

한 발자국 떼었을까

휘릭소리의 바람과 함께 촛불이 꺼졌다.

바람은 그 순간만 불고 사라졌다.

그리고 너도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네가 그러면

 

네가 그렇게 쳐다보면

난 자꾸 발끝만 바라보게 되잖아

 

네가 그렇게 고개 돌리면

내가 고개를 푹 숙이게 되잖아

 

네가 그렇게 말하면

다시 듣고 싶어 네 입술만 집중하게 되잖아

 

네가 그렇게 웃으면

내 얼굴은 우스꽝스럽게 변해버리잖아

 

네가 그렇게 다가오면

초점 잃은 내 눈이 어쩔 줄을 몰라 하잖아

 

 

 

흠 걔가 그 정도로 잘난 것 같지는 않은데?

흠뻑 빠질 만큼은 아니지 않나?

네가 잘못 보고 있는 거야.

 

걔가  너한테 눈길 하나 주는 거 보지도 못했는걸?

너도 사실 느끼고 있었잖아?

그렇게 우러러볼 필요 없다는 소리야.

 

그래 걔 다 좋은 데 말이야.

그 하나가 너무 치명적인 결점이라니까.

절대!  걔 흠집 내고 싶어서 하는 소리는 아니야.

 

뭐 그래도 좋다고?

흠 잡기는 이번에도 실패네...

 

 

 

이름:최인희

이메일: epoxy1212@naver.com

H.P: 010-3918-7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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