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회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공모 - <풍화> 외 14편

by 20jkim2 posted Apr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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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화


나는 모두가 돌인줄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구나.

나만 돌이었구나.


나만 돌인줄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구나.

나마저도 돌이 아니었구나.


나는 모두가 돌인줄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구나.

내 착각이었구나.

그들은 돌이 아니었구나.


그들은 분명 

그들은 결코

모래가 되지 않을 거라 했건만

단 하루의 태풍에

모래가 되어버렸구나.


아니다

나는 여전히 돌이다.

그들도 모두 돌이다. 


단지

우리 모두

깎이고 깎여

모래가 되었을 뿐이다.



그림자


젖은 베개.

그 찝찝함에 잠이 깨어

달밤에 밖을 걸어본다.

뒤를 돌아보니 내 뒤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가로등에 가까이 가다 보니 

내 앞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 그림자는 커지고 또 커져 나보다 커진다.


그러다 가로등이 꺼진다.

그리고 나의 그림자는 온 세상을 뒤덮는다.


그러다 닭이 울고

쥐들이 깨어난다.


그리고 한줄기 빛을 내뿜는 태양이 나타난다.

그토록 거대하던 그림자가 천천히 줄어들고 결국은 사라진다.

온 세상을 뒤덮었던 그림자는 온데간데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자가 또다시 드리운다.

나는 그 그림자를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발짝

한발짝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며 앞으로 나아간다.


까마귀


까마귀의 머리에 펜을 박는다.

펜을 뽑자 까마귀의 머리에서는 검은 피가 뿜어져 나온다.

그 검은 피에 빛을 비춘다. 

빛나는 칠흑의 분수

그 분수에 손을 씻고  머리를 감는다.


망둥어


해변을 뛰어다니던

망둥어 하나.


고대의 시간,

산소도 물도 없던 때부터 살아온

망둥어 한 마리가 있다.


그 망둥어의 암흑의 점액에 달라붙은 고대의 모래들.


망둥어는 바위 위를 날아다니던 이무기였다.


강강술래


사슬과 사슬과 사슬과 사슬

이들이 모여 둥근 철사슬을 만든다.


그 심장 정가운데

불타는 모닥불로

철사슬 하나가 흘러내려

땅속, 그 심연 속으로 스며든다.


사슬 하나가 녹아내린 그 틈새로 

모닥불에서 튀어나온 불씨 하나가 튀어

잔디에 불을 붙이고 화염을 일으킨다.



모든 사람은 각자 마음 속에 컵이 있다.


그 컵이 가득 차 있는 사람도,

비어 있는 사람도 있다.


나는 오늘 그 컵에 든 물을 누군가에게 주었다.

넘치지 않게 

한방울

한방울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 사람의 컵은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떨어뜨린 물방울들은 

컵의 벽면을 따라 내려가다

말라붙었다.


유리방



물이 차오른다.

물이 높아지고 높아져 내 목 밑까지 닿는다.

숨도 쉬어지지 않는 그 순간

나는 손을 높이 들고 치열하게 걷는다.


그 걸음의 끝에는 유리방이 있다.

그 유리방 속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찰나

사람들로 둘러싸인다.


빛으로 둘러싸인 나는 유리와 한 몸이 되어 투명해진다.


붉은 잔상


붉은 펜으로 적어내려가는 붉은 글씨들

붉은색만 기억나는 필기

정작 기억해야하는 것들은 검은 색 글씨인데

기억나는 것은 붉은 글씨의 잔상 뿐이다.


스포일러


걔 죽었대.


아 그러냐.

어차피 뭐

별로 보고 싶지도 않았어.


아 그럼 뭔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려줄까?


에이 뭐

굳이 그럴 것까지야

아.

근데 걔 어떻게 죽었냐.


나도 그건 몰라.

나도 티비에서 본 거라.


기차 여행



만져집니다.

손가락 하나가 

만져집니다.


하지만 저는 곧 내려야 합니다.

끝이 없을 줄만 알았던 기차 여행에도 

목적지는 있었나 봅니다.


저와 목적지는 다르지만 만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깨어났다.

춥다.

따뜻하다.



구멍에서 물이 나온다.

그 물은 봉긋한 언덕을 넘어

절벽 밑으로 떨어진다.


그 물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그 물만 보면 호기심에 다가왔다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나면 떠나간다.


사람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자

물이 샘솟고

사람들은 더 피한다.


물이 나오다 나오다

샘이 메말라 버린다.


그러자 사람들이 돌아온다.


기둥


우린 젊다고 하기에도 너무 어리다고 한다.


자신들은 생활의 무게가 있어 약간만 밟아도 무릎 꿇는다고 한다. 


우린 절대 무릎 꿇지 말라고 한다.

끝까지

끝까지 

버티고 싸워야 한다고 한다.


우린 젊다고 하기에도 너무 어리다.

삶의 무게를 지탱해줄 기둥이 필요하다.

근데 그 기둥이 밟히자마자 무릎 꿇어 버린다.


우린 그 모든 무게에

눌리고

또 눌려

작아지고

또 작아진다.


티끌마저도 되지 못한다.


폭죽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아직 남았다.


쌓고 쌓아

마지막 하나를 터트리기 위해

쌓고 또 쌓는다.


터지면


그때면 

다 웃겠지.


그러다 지나가버리겠지.


남은 것은 어쩌라고

냅둔 게냐.

치워주고라도 가야지.


겨울



앞으로 나아간다.

앞길을 막는 모든 눈을 치우고

앞으로 한걸음씩 나아간다.


힘겹게 앞길을 치워가면서 천천히 걸어갔지만

아뿔싸

바닥은 보지 못하였구나.


차가운 얼음장에 미끄러져 넘어져 버렸다.


여러번 넘어져 봤으니 괜찮겠지

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보려 하지만

계속되는 얼음장에 넘어져

피부가 무감각해졌다.


이젠 그 차갑던 얼음장의 냉기는 느껴지지 않고

무감각하구나.


따뜻함을 느껴보아야 냉기도 느껴지는 법이다.

냉기가 따뜻함을 식힌다면 냉기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


소나무


소나무가 보고 싶다.


봄여름가을겨울 모두 푸르던

소나무가 보고 싶다.


은행나무가 결코 자기 잎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 전에 밑둥이 잘려나갔으니.


단지 은행나무가 남기고 간 냄새만이 내 주변을 휘감을 뿐이다.


나는 소나무가 보고 싶다.

은행나무가 하지 못했던 것을 해냈던 소나무가 보고 싶다.


푸르디 푸르던 소나무가 보고 싶다.



이름: 김진현

전화번호: 010-2046-0612

이메일: 20jkim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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