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회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공모 - 한 낮의 유령들 외 4편

by 오수민 posted Apr 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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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유령들


식탁을 둘러싼 의자는 어째서 네 개인가에 대하여 골몰하는 한낮이 지속되고

언젠가부터 우리는 마주 앉을 일이 없게 된다

어쩌면 처음부터


부조화의 힘


힘 없고 가난한 자들은 뭉쳐 사는 법을 배우고

굶주린 것은 깨끗한 뇌

궁핍한 것은 선인장 같은 정맥을 어루만지는 손가락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건강한 영혼들

마음이 부유한 영혼들


너 그거 아니?

우리는 조화롭지 않을 때 완벽하다는 것 말이야


우리는 각자가 잘 어울리겠다지만

울퉁불퉁한 정맥은 서로를 향하며

고약한 유화 냄새도 뇌를 타고

영혼을 묶는 데에 한 몫하기 때문에

경련하는 손가락

볼품없지만 애정이 담긴 눈동자


너 그거 알아?

그거 아냐고

우리는 완벽하지 않을 때 행복하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느냔 말이야


셔터 소리

뭘 봐요

네 얘기야

당신도 다를 거 없어


축축한 모래와 고개 숙인 사람들


내가 널 울렸지

나는 이 모든 게 슬프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내가 날 욕했지

나는 이 모든 게 슬프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가끔 사람의 눈동자는 지옥 같고

깊어지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개를 더 깊이 숙인다

어디를 가든 바다를 볼 수 없고

발끝 모래가 더 잘 보였지

가끔 사람의 눈동자는 지옥 같고

지옥에서는 빈번한 눈물이 소비된다

내 손끝에 닿으면 불행해지는 줄 알고

많은 모래를 적셨지

세상 모든 바다들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슬펐고 많은 지옥이 움직인다


친구에게


네가 오래 타오르면

너마저 죽일 정도로 큰 타격을 입을 거다

너를 껴안고 싶어 하는 자들은 팔이 길고

너는 불꽃을 안고 살아가지

네가 사랑하며 사랑받는 이는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너는 대개 훼손되지 않는 삶에서 곧은 가지가 되어가고

스스로 심장을 태워가면서도 그게 너를 살게 한다면


늦겨울의 비애


우리 내일이면 감기에 걸릴 거야

지독할 거야

새벽 바람은 차가워

오전 다섯 시에 달린 적 있니

나는 족히 일 년 만이다

너는 손가락 나는 발목에 나란히 동상이 걸린다

눌러 쓴 캡모자는 반쯤 날아간다

축축한 포장도로

노란색 낙엽은 수북한데

시꺼먼 나를 앞에 두고 사진을 찍는다

아무것도 안 보여

걔는 발목이 빨간 게 무섭다며 웃었다

엔진소리가 웃겼다


그거 알아?

바람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그거 아냐고

너무너무너무 크게 들렸다

너 오늘 사람 하나 살린 거야

하하하하하하하

취하지 않은 채 비틀비틀 걷고 있다

둘 중 아무도 약을 먹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나는 면허가 없다

내 작은 친구의 등에 낙서를 한다

웃음을 멈출 수 없을까 봐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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