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차 창작콘테스트 시 공모 <유전> 외 5편

by 산중호걸 posted Apr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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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

 

아버지의 들창코를 닮아버린 아들은


학창시절 으레 놀림을 받았다.

철이 없던 아들은

맘에 없던 독설을 뱉어냈고

넌 길 잃어도 걱정 없겠다.”

아버지는 괜스레 웃고서

입에 쓴 잔을 들이켰다.

 

시간이 흘러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아들은

아버지의 사진 곁에.

조문객들은 아들을 보며

아들의 그 들창코를 보며

고인을 떠올리고 추억할 뿐.

 

아들은 추억이 담긴 술을 받아

입에 쓴 잔을 들이키며

괜스레 웃었다.

그 곁에


아버지의 들창코를 닮아버린 아이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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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물전 대학교

 

어물전 같은 강의실은

죽은 눈의 생선들로 가득하다.

 

꼴뚜기가 되지 마라

 

교수가 소금을 친다

후두둑 후두둑

생선들은 소금을 털어낼 힘이 없다.

 

그저 필라멘트 끊어진 전구처럼

빛 없는 눈동자에

매서운 소금이 떨어진다

후두둑 후두둑

 

어물전에 들어올 적엔

생명이 담겼던 눈들.

이젠 죽음만이 담긴

그저 죽은 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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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과장

 

옷장 구석 퀴퀴한 먼지를 털어내다

찾은 오래된 양복 자켓

오랜만에 호주머니 사무실에 들르니

78년생 오과장이 반겨준다.

 

나는 이리도 늙고 가치 없는데

오과장 자네는 그때 그대로구만

오랜만에 술이나 한 잔 하지

 

호기롭게 집을 나서지만

8950, 7350, 5550...

발길 닿는 곳마다 오과장도 끝자리 신세

 

세월이 흘러 변한 건

오과장과 내가 아닌

그저 세상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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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니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니였다.

 

누군가에겐

숨겨뒀던 고통의 기억이었을 수도.

 

누군가에겐

올곧게 자란 자랑의 기억이었을 수도.

 

누군가에겐

그저 담아두어야만 했던 마음이었을 수도.

 

누군가에겐

한순간을 뜨겁게 사랑했던 흔적이었을 수도.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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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

 

슬픔을 극복하려 하지 마라.

슬픔을 가슴에 묻지 마라.

슬픔을 두려워하지 말고

슬픔을 마음의 감옥에 구속하지 마라.

결국 슬픔이 스스로를 구속하게 된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슬픔을 그림자에 담아두는 것이다.

그저 그림자를 살펴

슬픔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림자의 깊이가 더해질수록

우리는 더욱 성숙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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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는 건

일상을 이전에 없던 색으로 물들이는 것.

그 사람의 색이 나의 색이 섞여

완벽한 데칼코마니가 되어가는 것.


사랑의 색, 설렘의 색

애정의 색으로 물들여진 하루하루가

하나의 거대한 그라데이션을 이루는 것.


그러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마음으로 느껴야만 하는 것.

그 색들로 다가오는 하루를 채워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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