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풀
서 현석
상냥히 누구의 말이라도 잘 들어주는 너.
살짝 껄끄럽지만 그래도 부드러웠지.
난 너의 다른 이름을 알고 있지. 개꼬리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어느 이에게도 반가워했지.
비웃는 이가 보면 지조 없다고도 하겠지만
너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어.
귀엽게 자는 아가를 간질이기도 하고
바람 불면 좋다고 꼬리 흔들었지.
타박네 너를 보며 배고프다 하여도
함께 장단 맞추어 노래 불렀지.
가을이 오면 뿌리를 내어주어
배앓이 하던 동네 꼬마들 뱃속의 벌레를 몰아내고
건강하냐고 온몸 흔들어 주던 너.
대머리 Ⅱ
서 현석
온 세상 빛나게 살았건만
박수 대신 손가락질과 비웃음만 받고 지냈네.
진화의 우성이건만 오히려 업신여김으로
취직도 어렵고 혼인은 더 어렵기만 하네.
누구를 탓하리요. 빛나는 내 인생!
세상은 더욱 가혹해서
몇 안 되는 머리를 깎으려 해도
비웃으며 제값을 다 받네.
억울하고 억울하네.
머리털에도 공정은 없었네.
머리에도 귀천뿐이네.
정녕 이발에도 공명정대는 사라졌단 말인가.
없이 살아서 고민이고 고충인데
없는 사람 가지고 놀다
골탕만 먹이는 한 많은 인생살이.
온 세상 빛나게 살았건만
모딜리아니의 커피점의 아네모네
(한 사람을 위한 시)
서 현석
우울한 커피색 배경에서 긴 목의 그녀는 약간 고개를
왼쪽으로 기우렸고 검은 옷을 입었어요.
처음 본 순간부터 기대하며 기다렸지만
이룰 수 없다는 현실을 알았을 때
괴로움 속에 쓰린 속을 커피로 달래고 있었죠.
그녀 혼자 건네는 위로의 말이
결국은 그녀에게 전하는 말이 되었죠.
이별 앞에서 슬픔 속에 전하는 영원한 사랑만큼
고통스러운 언어가 있을까요.
그녀는 백 년 가까이 그림 속에서 그 말을 전하고 있었죠.
파리
서 현석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길래
사는 동안 빌고 또 빌까
죽어야만 멈추는 기도.
욕된 자손의 후예인가
원죄를 혼자 사죄 하는가
해로움뿐으로 욕먹으며 생겨나서
욕먹고 끝내야 하는 서럽고 서러운 너.
지독한 악취와 오물 속에서
팔과 다리 온몸으로
수많은 전염병 세균까지 안고
비상한 너였는데
서럽고 서럽다.
고무줄놀이
서 현석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 입은 어린 소녀가
줄을 오가며 신나게 뛰어놀며 활짝 웃는데
줄잡은 아이도 빙그레 따라 웃네.
멀리 미루나무 가지도 깔깔거리며 흔들리고
따듯한 햇볕은 그림자로 줄 넘는 횟수를 세는데
코쟁이 신부님이 찍은 흑백사진에
아이들의 빠진 이도 웃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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