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공모 <토마토 지옥> 외 4편

by 구거궁문꽈 posted Jun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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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지옥

 

방 구석에서 토마토가 자라요

어린 토마토는 초록색이에요

시계 소리가 또각 또각

토마토를 두드리면

토마토는 붉은색이에요

 

아침에 토마토를 먹어요

여기저기 푸르딩딩 덜 익은 토마토를 먹어요

토마토 피에는 씨가 있어요

피를 서둘러 닦아내고 씨를 까만 구두 밑에 심었어요

 

점심에 토마토를 먹어요

부엌 싱크대 밑에서 오랫동안 안 쓴

냄비들과 함께 자란 토마토를 먹었어요

접시를 비우고 설거지를 할 때면

목구멍에서 주방용 세제맛이 났어요

 

저녁에 토마토를 먹어요

안방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는

쭈굴쭈굴 늙은 토마토를 먹어요

가죽이 질겨서 칼이 잘 들어가지 않았어요

 

집 여기저기에 토마토가 자라고 또 사라져요

토마토는 파스타

토마토는 케찹

토마토는 주스

토마토는 피자

토마토는 토마토

토마토는 죽는 재주가 많아요

 

방에 있던 토마토는 어느새

시계가 또각또각

붉은빛으로 늙어요

시곗바늘은 아직도 열심히

두 발을 구르는데

시계는 토마토를 사랑하지 않아요

 

내일 아침에도 토마토를 먹어야지

커튼 뒤에 숨어있던 토마토의

머리를 벗기고 가죽을 벗겨야지

창문 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바람에

토마토 덩굴이 바르르 떨려요



비둘기 댄스

 

얇은 다리로 땅을 박차 보지만

무거운 몸뚱이 탓에 뒤뚱뒤뚱

끝내 날아오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세상을-그들의 세상은 지면부터 구름까지인데

아홉 등분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선으로 아홉 등분 하고

각자의 구역에서 뒤뚱뒤뚱 춤을 춘다

 

식사 시간이 되면 전선에 일렬로 늘어서 번호를 부른다

하나---넷 다섯-여섯-일곱-여덟

아홉- 번호 끝-

발을 헛디뎌 자동차에 치이지 않게 주의하십시오

 

말하는 비둘기의 붉은 혀가 심장처럼 펄떡인다

 

음식을 먹고 세금을 내고

불편한 집으로 돌아가는 비둘기들은

뒤뚱뒤뚱 죽을 때까지 집을 벗어나지 못하고

무거운 몸뚱이를 탓하며 벗어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동전노래방

 

잠든 동전을 깨워 품에 몇 닢 품은 채로

달도 구름에 가려진 밤을 걷는다

 

슬리퍼를 끄는 발소리는 담벼락에 부딪혀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데

나는 큰 사거리가 나올 때까지 혼자였다

 

차가운 공기에 복사뼈가 시릴 때쯤

종아리에 복사뼈를 문지르며

땅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동전을 넣으면 곧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알록달록 화면 너머로

동전에는 날개가 있어서 추락하는가

 

내 갈비뼈 사이로도 동전을 한 닢

추락하는 동전 때문에 가슴속에는

동심원이 일어난다

 

동심원은 좁디좁은 방 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곧 나를 만났다가

곧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가

이내 소리를 잃어버린 채 꺼진다

 

꺼져가는 동심원을 다시 만들기 위해

동전을 한 닢

또 한 닢

갈비뼈 사이로 사라진 동전은

한참을 찾아도 흔적이 없었다



다이어트

 

속을 비워내는 연습을 해야했다

 

부푼 개구리의 배처럼

한껏 부풀어 있는 나를 터뜨려야 했다

 

숟가락과 젓가락은

나의 거울, 나의 칼, 나의 방패

나는 너고, 너희는 나였다

사용이 줄어든 너희는 점점

차갑게 식어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침을 절반으로 줄이고

점심을 절반으로 줄이고

저녁을 절반으로 줄이고

다이어트는 설거지도 절반으로 줄여주는데

 

무거운 몸뚱이를 이끌고

밖으로 밖으로 나가

허기진 속을 붙들어 매고

한참을 뛰어다녔지만

내 용량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나를 덜어내는 연습을 해야했다

 

나는 어두운 밤 가로등 밑에서

나의 절반을 버리고 왔건만

나의 무게는 그리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파도

 

발을 디딜 적마다 발목까지 꺼지는

모래사장에 나를 세웠다

 

몸은 여기저기 고장이 났는데

바람이야 견뎌 내지만 어찌 성난 파도까지 견디랴

쏴아- 무너지고

쏴아- 무너지고

파도는 하아얀 거품을 물고 나를 잘게 채찍질한다

그 속에는 흩어진 나의 표정이 한 조각

파도에 발목 윗부분이 으스러져 나의 이름을 잃어버렸다

 

갈매기는 잘려나간 오른손을 물고 흐린 하늘을 날갯짓한다

오른손에는 부러진 펜이 들려있다

저 지저분한 새는 어딘가에 내 오른손을 심어라

그곳은 양지바르고 땅이 단단하여라

파도와 함께 해변에서 멀어지는

입술이 중얼거린다



이름 김영호

E-mail kyho4849@hanmail.net

휴대전화 010-5535-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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