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스탕스
사랑이여 다가와라, 돌진해라.
내 비록 너덜너덜한 심장을 높이 쳐들곤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치맛자락 동여맨 언청이,
환상에 취해 공사장을 떠다니며
천국을 꿈꾸는 장님,
저항군의 검은 까마귀를 보지 못하는
불구에 불과하지만 그대를 향한 마음만큼은 진솔하여
반항 높은 줄 모르니
사랑이여 돌진해라.
만류하는 레지스탕스여 다가와라.
내 사회에 억눌린 짐승이라
그림자에 깔려 엉엉 우는 신세지만
‘그대’를 손에 넣었으니
바다 넓은 줄 모르고 이 한 몸 던지노라.
사랑이여 땀 흘려라.
나의 영혼을 보내노라.
비둘기가 묻기를.
땟물 묻은 비둘기 한마리가 나에게 와서 묻기를,
바닥에 머리를 두고 어딜 바라보고 있는 가
고개 한번 들면
무수한 수인의 영혼으로 가득 찬 구름과
부모가 물려준 머리칼 자르고, 태극기 높이 들던 운동가와
위험한 줄 모르고 내 새끼 구하러 물에 뛰어드는 비둘기가 날아다니는데
그대는 그림자에 숨어 뭣하고 있는가.
밤이 되면
세인의 눈물이 하늘하늘 별이 되어 앞을 밝히고
낮이 되면
불타버린 한 조각 꿈이 한줌에 반짝이는데
그대는 고개를 들지 않고
세상에 물들어
날개 한번 펼쳐들지를 않구나.
내 비둘기로 태어나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 신세로 전락하여
거꾸로 된 세상을 걸어 다니고 있다지만
그대는 몸 멀쩡한데
바닥에 머리를 두고 어딜 바라보고 있는 가.
사막을 걷는 낙타
옆집 아낙네가 주접을 떨기를,
세월이 변했다더라.
예전엔 다방에서 연락 닿지 않는, 연인에게 편지 썼는데
이제는 연락이 너무 잘 닿아서 지겹다더라.
아날로그가 모래시계라 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모래가 쌓이고 쌓여
사막이 되었다더라.
옆집 아낙네가 주접을 떨기를,
예전엔 자신이 학이라, 호수에서 발장구를 쳤는데
이제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꿈꾸며 허덕이는 낙타가 되었다더라.
옆집 아낙네 말을 들으니
배가 불룩 나온 것이 돼지 같기도 하고 낙타 같기도 하고 흰머리 수북한 학 같기도 하더라.
사막을 걷는 낙타라 함은
태양 볕에도 빛나는 법인데
문득 아낙네를 보니
시간에 색이 문드러져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주부로 전락하여
아무 꼬마나 붙잡고 한탄하는 신세가 참으로 안타깝더라.
벽돌
창조자의 굳은 손가락을 보아라,
손가락 끝에서 뿌리가 돋아나 갈래갈래 얽힌 나무가 되니
그들의 노고를 무시하지 말라고
벽돌 장인이 전해 달라하네.
내가 친히 진흙을 반죽하여
단단한 벽돌을 만들었건만
내 손가락나무에서 나온 새끼들이 세인의 발에 밟혀
하나하나 부서지더구나.
마음아파 세인에게 발을 떼고 걸으라 했건만
벽돌은 벽돌이라며 찬찬히 짓밟더라.
창조자의 손을 무시하지 말라.
기껏 쓴 시 한쪽이 갈래갈래 모여
무한한 시간에 뒤섞인 다중우주를 만들어
하나의 거대한 나무가 되니 그 아래 그림자에서 찬찬히 쉬고 가거라.
그때까지도
‘그대’라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온 몸에 파아란 꽃이 퐁퐁 피어오른다.
꽃봉오리가 시간에 젖어
언제 백발이 될지 모르지만
그때까지도,
뿌리가 벌레에 들끓어
언제 사그라질지 모르지만
그때까지도,
그대 우주에
‘나’라는 깃발을 꽂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