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공모 <겨울 병상>외 4편

by 우미노 posted Jun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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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병상

 

새하얀 침대에 뉘인 노인의 얼굴은

눈발에 얕게 씐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포근하다

불 붙이고 싶다

몸에서 가장 하얀 그걸

텅 빈 뼛속을 채운 공허한 시간이

한줌 푸석한 잿가루로 태워진다면

내 뜨거운 혀뿌리에 털어넣고싶다.

쓰디쓰게 삼키고 싶다.

싸륵싸륵 내리는 정적이 잠든 혈관을 깨운다.

 



某記


야릇한 담뱃불을 입 속으로 얼른 잡아끌고 싶었다.

그러자 불빛은 재가 되어 나를 떠나갔다.


끈적한 초여름의 일몰.

내가 그토록 경멸하던 모기.

그것들이 무수히 떼를 지어 떨어지며,

위아래로 떨어지며 짝짓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탁한 입술에서 잿더미를 태우며

부서지는 연기만을 내쉴 뿐이었다.

추락하는 녀석들을 보며

그들은 사랑하는 건가 죽어버리는 건가

단 하루도 못되고, 짧은 황혼의 시간만이

모든 인생과 다름없던 그들에게

사랑은 곧 죽음이었고 그것만이 삶이었다.

 

황홀한 생을 성급히 카메라에 담으려던 나의 아둔함에

너무도 작고도 투명한 날개는,

노을빛에게 그림자조차 남겨주지 않았고 빛 속에

그들의 비밀 같은 자취를 감췄다.

순수한 영혼은 박제할 수 없다는 걸, 나는

그제야 알았다.

 

처음으로

모기에게 피빨리고픈 붉은 노을이었다

녀석들에게 내 징그러운 피를 모두 빨리고 싶었다

혈흔 하나씩 새겨지고 싶었다 그들에게

새겨진 입술자국 하나씩 어린아이 마냥 십자를 긋고

폭발하는 쥐라기의 무수한 화산들을 꿈꿀 것이었다.

 

그래,

피 하나를 내준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나는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영원히 사는 것이다.

 

 

 

 

그림자

 

1

그는 아직도 나를 45번 훈련병님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를 46번님이나 이 아무개라고 불렀다.

우리는 동갑이었다.

 

2

 

그는 조치원의 A모터스에서 자동차 정비를 하다 왔다고 말했다.

카키색 천막으로 뒤덮인 군용트럭에 무지방 우유 홈런볼 박스를 올려

싣고 있을 때였다. 마스크에서 비어져 나오는 더운 숨이 그의 옛된 안경에

부옇게 김을 서리곤 어딘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맹금류의 눈으로 그의 정수리를 노리던 해가 그의 이마에 획처럼 그은

주름을 보며 나는 머뭇거리다 나의 아버지가 파란색 현대 포터를 몬다고

말했다. 이곳저곳이 붉은 녹이 슬고 칠이 벗겨져 상어의 이빨자국이 선연한

헤밍워이의 참치를 연상시키는 트럭이었다. 아버지는 그것과 함께 삶의 한

시기를 달그락거리며 살아왔다. 그는 그저 웃더니 자기는 포터보다는 봉고가

좋다고 답했다. 간혹 봉고에서 바다 향이 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바다향이 나는 봉고를 정비할 때면 아무도 보지 못하게 트럭 밑으로

완전히 기어들어가 한동안 눈을 감고 있는다고 말했다. 나는 한 시인의 시를

떠올렸다. 0, 눈내리는 플랫폼 위를 저공비행하는

검은 새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 역시 그러나 조금 다르게, 그는 12시의 직사를

피해 한 생을 파랑에 깎인 섬들 아래에서 부유하고 있을 것이다.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안식을 취하는 정오의 그림자처럼.

 

 

흰 달걀

 

닭장에 있는 닭 두 마리가 모두 암탉이라는 것을 안 것은 어제 점심이었다스무날이 다 되어가도록 제 집안에서 알을 품고 있던 흰놈은 모를 일이었다흰놈이 똥꼿심이 좋다던 내 아버지도 모를 일이었고 병아리 낳아봤자 무에 좋냐던 나의 어머니도 모를 일이었다그저 어머니는 녀석을 끄집어내려다 쪼인 손등을 살며시 문질러 볼 뿐이었고 아버지는 젓가락으로 계란후라이를 조심스레 자를 뿐이었다. 나는 그저 종종 어머니의 옷섶을 헤집고 대거리를 자궁으로 들이밀고 싶어하던 오륙세의 나를 떠올릴 뿐이었다. 아무 소리도 없이 텅 빈 달걀이 깨지듯 시간은 그렇게 괴여 있었다.

 

 

마지막 시

 

좁은 쇠창살 틈으로 빛이 들었다.

그의 얼굴이 반으로 쪼개졌다.

노래하듯 입술이 옴작거리고 있었다.

회백색 콘크리트 벽에는 꽃들이 피어 있었다.

그는 언어로 그것들을 심었다.

언젠가 잃어버린 그의 약지 정도 길이의 함석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공간 속에 분진들이 일었고, 햇빛은 허무보다 가볍게 떠오르는 먼지들을 찬란하게 만들었다.


성명: 전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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