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차 한국인 콘테스트 시 부분 공모 <낚시> 외 4편

by 보노우직 posted Jul 0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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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늦더위가 찾아온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백발의 노인은 낚싯대를 들고

근처 강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푸른 낚싯대로 무엇을 잡을까?

강가엔 정적이 흐르고

고민도 잠시

어부는 마음을 정했다

붉은 연어가 좋겠어!

낚싯대를 든 어부는

강물을 보며

잠시 상념에 빠진다

이곳은 볼 때마다

참 미묘하군

푸른 바닷속

붉은 연어들이 헤엄친다

낚싯줄을 던지고

35분쯤 지났을까?

지친 이방인 하나가 걸려들었다

그놈은 겉과 속이 달랐지만

어부에겐 여유가 없었다

긴 기다림 끝에

낚싯대를 들어 올린

어부는 반가움을 참지 못했다

그대는 어디서부터 거슬러 왔습니까?

함경도? 평안도?

그대는 한반도를 헤엄쳐 왔군요

70년이 흐른 잿빛 강물을

당신은 잘 알 것만 같소

내 구슬픈 민요를 들어보겠소?

낚싯줄에 걸린 연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 검정으로 우리 모두를 칠하고 싶소

어떤 빛깔도 가지지 못하게 말이오

그리고는 아무도 몰래

내 고향에 가보고 싶다네

그것뿐일세

35년의 기다림 속에 지쳐가고

그리움에 사무칠 때가 많소

온기가 그리울 땐

이렇게 낚싯줄을 던져

잠깐의 푸념을 하곤 한다네

연어는 대답하진 못했지만

분명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1985년의 9월의 햇살은

참 그립고 따스했소

혹시 혼자 도망친 내가

가족들이 보고프다 하면

그건 너무 큰 욕심처럼 들리오?

그렇다면

부디 당신이 내 소식을 전해주오

난 민물의 장어일 뿐이고

유연하지 못하오

그댄 당차고 자유롭지 않은가?

부탁하네

이것이 내 한 서린 민요일세

연어는 어부와 잠깐의 눈 맞춤 후

신중히 고갤 끄덕였다

미묘한 표정을 짓던 어부는

낚싯줄을 풀어 연어를 놓아줬다

그것은 민요에 화답하듯

북쪽으로 헤엄쳐갔고

그렇게 떠나갔다

다시금 정적이 강가를 삼키고

잠깐의 상념에 빠져든다

어부는 떠나간 이방인의 신발이 탐났다

그것은 참 당차고 자유로워 보였다

지나가 세월의 회한이 어부를 덮쳤다.

내일은 호수로 가야겠군

그곳은 더 시원할 테야

오늘따라 물에 비친

어부의 장화가 낡아 보였다

늦여름의 태양만이 어부를 반겼다

 

 

 

 

 

 

 

 

<나의 퇴근길>

                         

 

 

 

유독 햇살이 거칠던 오늘

오후 6

집으로 가는 길이다

나의 퇴근길

오늘 하루도

잘 버텨내줬구나 고맙다

나에게 감사를 건네고

집으로 향하는 길

빽빽한 아파트 정글과

화려한 번화가를 지나야

비로소 보이는 우리 집

집에 도착하기 전

번화가와 우리 동네를

연결 짓는 신호등에 서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과

제각각 다른 멋진 옷차림들

말끔한 옷들 사이

흙먼지로 뒤덮인 내 반바지는

돋보였고 서글펐다

분명 내 출근길엔

종달새만이 나를 반겨줬는데

퇴근길엔 사람들이 가득하구나

참 이상하다

울적한 마음에

바뀐 신호를 첫 번째로 건너고

드디어 우리 동네에 도착했다

푸근한 공기와

언제나 정자에 앉아계시는 어르신들

수다 떠는 아줌마들까지

그래 이곳이 나의 번화가였다

반가운 마음에

근처 상가에서

끊었던 담배를 꺼내든다

담배연기가 흩어지며

오늘 내 하루가 피어오른다

아파트 공사장 인부의 하루 말이다

더운 여름

두꺼운 안전모와 장갑을 끼고

지상 몇 십 미터 위에서

철근을 자르고 나르는 일

그것이 내 하루였다

난 고소공포증을 가졌지만

먹을 쌀이 부족했던 공포가

훨씬 크고 두려웠다

복잡한 생각의 소용돌이 속

문득 행복에 대한

상념이 나를 덮친다

예쁜 옷 멋진 신발

좋은 집 그것이 과연 행복일까?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난 그것들을 평생

가져본 적도 없고

가지고 싶지도 않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행복은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럼 행복이란 건 무엇일까?

늘 이 질문엔

난 묵묵부답이었고

그렇게 조용한 5분이 지나버렸다

담배를 태운 후

10분을 묵묵히 걸어

내 집 앞에 도착했다

드디어 빌라 문을 열고

집으로 향했다

터벅터벅 터벅터벅

빌라의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며

엄마하고의 약속을 떠올린다

크고 높은 아파트를

사주겠다는 약속 말이다

그것이 엄마의 행복이라면

꼭 이뤄줄 거라 다짐했던 나였다

하지만 나는 한없이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고

오늘따라 아파트는

더욱 높게만 느껴졌다

현관 열쇠를 돌리는 내 눈엔

이유 모를

눈물 한 방울이 맺혀있었다

 

 

 

 

 

 

오전7(부제: 청춘의 시속)

                              

 

 

 

오전 7

째깍째깍 따르르릉

시끄러운 폭탄을 해체한 시간

몽롱한 5분을 지나

하얀 셔츠와 검정 타이를 매고

집을 나선다

녹슨 자전거를 타고

향하는 등굣길

주위를 둘러보면

이른 아침이지만

많은 것들이 깨어있다

또 스치고 지나간다

지루한 등굣길에서

눈을 돌려

일 년에 며칠만 깨있는

풍경에 눈을 맞추던 중

기분나쁜 경적을 울리며

내 옆을 맹렬히 스치는 오토바이

찌릿한 시선을 쏘아보지만

검은색 헬멧은 단단했다

다들 급한지 과속을 했고

모두가 그랬던 것 같다

내 옆을 지나는 자동차

백미러를 훔쳐보니

같은 반 친구가 졸고 있네

친구의 검붉은 운동화와

꽉 조인 허리띠는 뭔가 애석해 보였다

그들이 과속하며 만든 거리의 소음은

힘차보였지만 시끄러웠다

오전 8

등굣길에 만연한 벚꽃을 뒤로한 채

늙은 학교에 젊은 청춘들이 도착한다

친구들의 뒷모습엔 저마다의

설렘이 피었고

그것은 자유라는 꽃이었다

허나 설렘도 잠시

탁한 콘크리트 벽과 드높은 계단은

꽃을 병들게 했다

 

오전 9

종이 울리고

젊음이 가득한 교실에 누군가 침입했다

딱딱한 종이와 날 선 분필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것들로 항상

지루하고 괴상한 것을

50분이나 적고 그리셨다

칠판에 가득한 타국의 언어

내 친구들은

그것을 외우려 안간힘들이었고

그렇게 7번이 지나면

우릴 집으로 반송시켰다

그것이 내가 본 학교의 전부였다

 

오후 6

학교에서 해방한 기쁨도 잠시

다시 난 구속되어야 했다

무거운 몸으로 녹슨 자전거와 함께

두 번째 등굣길로 향했다

일터는 번화가에 위치한 뷔페

화려한 음식들 속에

내 저녁은 차가운 라면 한 봉지

짧은 저녁식사 후

교복이 아닌 유니폼을 입고

시작하는 두 번째 수업

수 백 명을 응대하며 짓는

마네킹 웃음과

몇 백 개의 수저와 접시를

준비하고 치우는 일

그것이 내 하루 중

가장 뜻깊은 일이다

 

오후 10

오늘은 21

소중한 내 월급날

업무시간이 끝나고

일터를 감도는 적막

매년 찔끔 오르는 임금에

사장의 한숨과

내 친구의 미묘한 웃음

불쾌한 계산기 소리와 함께

그 위를 춤추는 손가락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초록빛 줄다리기가 열렸다

사장은 항상 가족 같음을 강조했지만

그때는 분명 남이었다

숫자놀이가 끝나고

뜻 모를 핀잔과 함께

사장이 건넨 따가운 봉투를 받아든다

죄지은 표정을 짓던 난

울적한 맘에

행선지를 고민했다

? 아니면 공원?

그러다 문득 떠오른 영화 한 편에

발걸음을 재촉해 도착한 번화가

여유롭고 넉넉해 보이는 사람들

내가 손님으로 맞았던 사람들까지

거리의 화려한 행복들 속

내 젊음은 남들의 장식품쯤이었다

 

오전 12

코미디 영화를 보고

집으로 향하는 길

주위를 둘러보면

늦은 저녁이지만

많은 것들이 깨어있다

이건 오직 밤에만

담을 수 있는 풍경들이다

아침에 봤던 벚꽃이

이리 쓸쓸해 보였나

거리의 소음이

슬프게만 들리는 군

사람들은 지쳐 보이고

어느새 아침의 과속은

새벽의 저속으로 바뀌어있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

직행한 포근한 침대

문득 고독한 상념이 들고

침대에서 괜히 켜보는 sns

누군가의 행복을 훔쳐보다

드는 복잡한 생각과 하루들

나는 어디쯤을 지나고 있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이상한 거미줄들이

나를 휘감아 뒤섞었고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째깍째깍 따르르릉

시끄러운 폭탄은 또 울려댄다

다시 오전 7

 

 

 

 

 

 

 

 

 

 

<철도 여행>

              

 

 

 

오늘은 설레는 휴가 날

배낭을 메고

기차 타러 가는 길

싱그러운 바람과

넉넉한 햇살

향기로운 꽃내음까지

새로 산 흰색 셔츠는

배에 넣어 입었고

모든 순간이

여유롭고 풍요롭다

그렇게 도착한 기차역

역 안은 북적거렸고

들려오는

다양한 억양과 언어들

오늘은 그것들이 음악으로

들릴 만큼 즐겁다

기차 출발은 11

지금은 1030

간단한 요기를 채울까 하다

눈으로 하는

군것질을 택해본다

다른 여행객처럼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어

이곳저곳을 찍고

인화해 기록했다

어색한 내 사진과

특별한 기차표도

한 장 찍었다

이상하게 이 기차역엔

붉은 색깔들이 가득하네

사진 속 담긴

내 배낭은 푸른색이었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기차에 앉아

오늘의 일정을 떠올린다

가이드가 없는

자유여행에

조금은 떨리지만

이번 여행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무엇을 먹어볼까?

냉면과 순대가 좋겠네

또 무엇을 먹어볼까?

만두와 식혜도

먹어봐야지 하고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때 들리는 안내방송

"이번 역은 의정부입니다"

"아직 좀 남았네"

창밖 세상엔

봄이 만연했고

새 생명이 기지개를

키고 있었다

다시 그렇게 30

경치를 멍하니 보던 중

따사로운 누군가가

내게 인사했다

웃음을 짓던 난

그것의 온화함에

잠시 눈을 감았고

시침이 몇 바퀴 돌때쯤

희미한 음성에

선잠에서 깨어났다

조용한 소리에 귀 기울이니

들리는 소리

"이번 역은 평양입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품었다

요즘엔 계속 그랬다

 

 

 

 

 

 

<우리의 노동조합>

                              

수십년을 함께한 우리의 벗

강산이 변해도 우린 변치 않는다

그대의 고민엔 머리를 맞대고

그대의 푸념엔 술잔을 맞댄다

벗은 댐처럼 묵묵하다

 

수십년을 분투한 우리의 댐

세월이 흘러도 우린 흐르지 않는다

거친 폭우엔 넓은 우산을

고된 가뭄엔 오아시스를

댐은 의사처럼 치열하다

 

수십년을 돌 봐준 우리 주치의

전염병이 돌아도 우린 포기치 않는다

빨간 상처에는 파란 용기를

파란 좌절에는 빨간 열정을

의사는 벗처럼 따뜻하다


이름: 정우진

이메일:kcgf3566@naver.com

연락처:010-6894-5015, 010-3923-5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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