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다리>
지친 나그네여,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세요.
회색 빛 도시
회색 빛
매일 똑같은 삶
매일 시커먼 복사기 앞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매일 부장님 커피를 타다 드리는
평범한 청년이 있었대요.
평범하던 아침
우중충한 하늘엔 기적같이
일곱 빛 아름다운 무지개가 나타났답니다.
흐리멍덩하기만 하던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그 남자는 말했죠.
“저 무지개를 건너보고 싶어!”
“미치광이, 미치광이.”
넥타이를 두른 점잖은 신사들은
모두 어이없다며 비웃었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청년은
그 높은 산을 오르고야 말았대요.
날카로운 산비탈에서 아이처럼 폴짝폴짝.
정상에 오르자 그 남자의 가슴은 잔뜩 부풀어 올랐대요.
“아, 아름다운 여왕이여,
당신을 가리는 이 우울한 구름들을 해치고 나타나
저 높은 천국의 선율로
지친 인간들의 영혼을 달래주오.”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 남자는
그 다리를 오르기 위해
떨리는 가슴을 붙잡고 하늘로 몸을 던졌대요.
어머니의 옷자락처럼
그의 얼굴을 뒤덮는 찬란한 무지갯빛
탄성을 지르며 그 청년은 황홀한 눈을 감고
다정히 죽음을 끌어안았대요.
그의 행복한 눈물이 땅에 떨어질 때
억수 같은 비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답니다.
“미치광이, 미치광이.”
현명한 신사숙녀들은 창 밖을 바라보며
죽은 그 남자를 비웃었답니다.
다음날 비가 그치자
마법같이 절묘한 우연으로
파란 하늘에 더욱 찬란한 일곱 빛깔 무지개가 나타나
지친 사람들의 어깨 위에
차분히 내려앉았답니다.
<사소한 진실>
당신은 곧 죽을 거에요.
다시 생각해 보세요.
오싹한 괴담도,
끔찍한 저주도 아니죠.
슬픈 일이 생길 거에요.
찬찬히 곱씹어 보세요.
비극의 첫 대사도,
오늘 아침 운세에 나온
충격적인 말도 아니죠.
“내 운명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이제 더 이상 하지 마세요.
끝없이 갈라진 길에서
당신은 선택권이 있어요.
무슨 말을 하려는지 헷갈리시나요.
그럼 앞서 말한 사소한 진실 두 가지를 반복해 드리죠.
당신의 삶에는 수없이 많은 행복의 씨앗이 있어요.
그리고
당신은 아직 살아 있어요.
<시>
바람처럼
햇살처럼
달빛처럼
부드럽게 다독이는 너 그런 글 되어라.
꽃처럼
불꽃처럼
한여름의 사랑처럼
열정으로 타오르는 너 그런 글 되어라.
천둥처럼
우레처럼
솟아오른 파도처럼
온 세상 뒤흔드는 너 그런 글 되어라.
한 글자 한 글자 지나갈 때마다
사람의 가슴속에 내려않는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갈 때마다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울려퍼지는 종소리처럼
천상의 음악처럼
막 핀 꽃의 애처로운 마지막 노래처럼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너 그런 시 되어라.
<절경>
구불구불한 산길 틈새 사이
빽뺵히 늘어선 차들 속에서
흐릿해진 회상을 되찾기 위해 사람들은 길을 떠난다.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장면들
어린 입술로 속삭이던 말들이 눈앞에 펼쳐질 때
사람들은 깨닫는다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눈물과 함께 흘려 보낸 시간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음을 꺠닫는다.
어느새 캠코더엔 추억이 서리처럼 끼고
눈가엔 얼어버렸던 어린 시절이 방울방울 맺힌다.
눈앞의 절경과 지난날의 추억이
한데 뒤섞여 눈가를 흐린다.
시간은 과연 직선으로 흐르는가
세월의 급류를 거슬러간 우리는 답을 알지 못한다.
흑백사진 속 함박웃음 지은 얼굴들이
떠나려는 시간 속에 발자국을 남긴다.
<아기>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울고 있다.
엄마는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아기는 계속 서럽게 울면서
혼자 눈물을 닦는 법을 배우고
혼자 견디는 법을 배워도
여전히
밤이 와
나 혼자 서 있을 때면
어릴 적
업어주시고 달래주시던
엄마의
아빠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괜찮다 괜찮다 어르는 소리
다시 한번 듣고 싶다.
인생의 물살에 종아리를 담그고
세상의 팔뚝에 등을 맞대고 살아도
나는 여전히 품에 안겨 빽빽 서럽게 우는
어린 아기인가 보다.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울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