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차 창작 콘테스트 시 부문 공모 <흰수염고래> 외 4편

by 김동건 posted Aug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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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수염고래


흰수염고래는 제 덩치에 으스댄 적 없지요

놀라워라 다들 바닷가에서 기다릴 적에도

고래는 가장 큰 곳에서 작은 곳으로

긴 수염 쓸어내린 일밖에 없지요

그러면 파도가 고래인 양 꿈뻑꿈뻑했지요


헌데도 사람들은 그 모습을 알지요

희고 가는 수염이 닳을 때까지 배회하다가

끌어내어진 고래는 긴 수염 끊어내곤 멀리

작은 곳에서 큰 곳으로 멀리 떠나버렸지요

놀라지 않는 이들은 더는 바다를 찾지 않고

그 앞에서 나는 꼼지락대는 파도가

고래의 신호일 거라 생각할 뿐이지요




가장 이상적인 팔베개


유독 끌어안는 걸 좋아하는 나였다

멋들어지게 안아올리고 싶었지만

가벼운 너조차 들지 못하는 팔이었다

내 팔베개를 참 좋아하던 너였다

말랑한 팔이 좋다며 안기듯 네가 들어오면

최대한 편안토록 나는 자세를 취해주었다

탄탄하지 않은 팔이라 다행이었다

너는 나의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에도

용기를 주어 또 나는 더욱 사랑을 담아

팔을 내어주는 것

참으로 완벽한 팔베개




거미


거미는 멍청하다

부숴도 부숴도 자꾸만 집을 짓는다

인간보다 약한 주제에 포기를 모른다


거미는 무식해서

끈덕지게 들러붙는 것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풀벌레


풀벌레 소리를 들어라

잠들지 않는 밤의 안식이다


흔하디 흔한 소리지만

쉬이 들을 수는 없는

도심 안의 숨어든 생명이다


눈뜬 아침엔 들을 수 없는

어둠 속에 빛나는 숨결이다




귀가


흰 머리가 거뭇거뭇 드리운

한 장년의 전화기에서

어린이 만화 주제가가 울려퍼졌다

자연스레 그쪽으로 신경이 쏠렸다

그는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전화를 받아 건너의 상대에게

아주 흡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제 다 와가

순간 나는 행복한 마음에

미소를 지었다




눈물 바다


바다는 눈물을 닮았다

울음 앞에도 덤덤한 파도는 제 길을 가고

모든 설움 받아내어도 여전히 짜다

사람들은 종종 바다를 찾는다

짠내나는 파랑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기 때문이다

물보다 진하지만 과하지는 않다

그저 묵묵하게 같이 울어준다

그래서 바다는 눈물을 닮아 짜다

 

어쩌면 너무 많이 울고 갔기에 바다는 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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