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우울
까마득한 심연에 깊게 발을 들이니
심연이 물어왔다
이 곳에 발을 들일 용기가 있는가
망설이며 대답을 하였다
용기는 없다 항상 두려울 뿐이다
그 두려움으로 숨기 위해 도망쳐 왔다
슬픈 표정을 지으며 듣고 있던
심연이 말하였다
당신이 이 곳에 오기는 아직 이르다
들끓는 분노를 담아 심연에게 소리쳤다
그럼 도대체 어디로 가야하는가
너 마저 나를 내친다면 어디로 숨어야 하는가
목에 피가래가 끓도록 울부짖었고
눈이 터질 정도로 째려보았고
심장이 멈출 만큼 화를 내었다
심연은 참을 수 없는 눈물을 쏟아내며
나에게 말하였다
아직은 나약한 존재라 당신을 위로하지 못해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게 아니다
그냥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심연은 결국 나를 돌려보냈다
심연이 마지막으로 말하였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자며
gloomy sunday
추적 추적 창밖에 비는 내리고
비를 맞아 날개가 젖은 저 새는
날지 못하는 구나
서재는 습함과 곰팡이 냄새로
가득하고 새끼 거미들만
바닥에 기어다니는 구나
테라스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깨지고 금이 간 저 찻잔엔
빗물이 고여가는 구나
먼지 가득하고 볼품 없는 방은
알 수 없는 발자국과 손자국이
덕지덕지 수놓여져 있구나
여기 홀로 놓여진 나는
어느 곳에서 위로를 받아야 하는가
어느 곳에서 쉴 수 있을까
장미꽃 한 떨기 바닥에 뚝 떨어져
제 몸하나 가누지 못한채 나부끼는데
내 모습과 다를 바 없더구나
더 이상 내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깜깜하고 축축한 구멍을
한없이 또 한없이 떨어져 간다
기어코 나는 다시 사랑을 시작했다
그렇게 찢어 발겨지고 산산히 흩어졌는데
결국 다시 기댈 곳을 찾았다
기어코 나는 다시 사랑을 속삭였다
수많은 말들이 내 심장을 찌르고 터쳐놨는데
결국 다시 애틋한 단어를 지껄였다
기어코 나는 다시 사랑에 빠져 희생했다
발 끝이 갈라지고 온 몸이 조각조각 부서졌는데
결국 다시 걷고 또 노력했다
그런데, 그런게 사랑인 줄 알았다
내가 하는 것들이 사랑인 줄 알았다
그냥 지독한 외로움에 몸부림을 쳤을 뿐이다
나는 나무였다 올곧고 쭉 뻗은 나무였다
그들은 나에게서 잠깐 쉬어갔을 뿐이다
잠시 스쳐가는 휴식처였다
조화로움은 없었다 그냥 나만 있었다
결국 모두 떠나가고 혼자였을 뿐이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을 갈망했다
누군가가 혹여 사랑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들꽃이라 대답할 것이다 계절이 지나면
사르르 시들어 버리겠지만
결국 다시 새 생명을 움트어 함께
살아갈 수 있을테니
진정한 사랑은 나만이 아닌 서로에게 있음을
일방적인 사랑은 나를 더 외롭게 했음을
일방적인 노력은 나를 더 지치게 했음을
일방적인 대화는 나를 더 목마르게 했음을
서로의 감정이 느껴지고 서로의 영혼을 교감하며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고 서로의 슬픔을 안아주며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사랑있다는걸
광활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저 너머
상상할 수 없는 무엇인가 존재하는걸 느껴보았는가
존엄한 하늘의 신조차도 저 너머의 궤도를
모두 거닐지 못했다는걸 감히 상상해보곤 한다
저 우주를 흩뿌리는 아련한 저 은하수는
내 감정을 아찔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보여주지 않아 훔쳐보았고
훔쳐보아도 알 수 있는건 없었다
저기 저 아득한 영역은 느끼지도..
감당하기엔 나약한 존재였을 뿐
그래도 인생의 한 번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감히 그 한 번을 허락해준다면
그 궤도에 따라 몸을 맡겨 흘러가고 싶다
없지만 무엇이든 있는 곳으로
더 없을 고요함과 눈부신 저 별들 사이로
춥지만 더 없을 따스함을 느끼며
탐 (貪)
깊은 욕망에 따라 움직여 꽉 움켜지는 순간
부서져 간다 하나 둘 씩
지독한 집착으로 벼랑 끝으로 몰아 공포에 질린 순간
떨어져 간다 한없이 나락으로
가득찬 의심으로 억지로 새장에 가두어 감시한 순간
숨이 멎어간다 그 삶은 부정당했기에
존재를 부정당하며 자신을 잃어가는 순간
끌려간다 저 한없고 깊은 구덩이 속으로
끝없는 욕심으로 갈망과 갈취로 모든걸 헤집어 놓은 순간
흩어져 간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공허로
탐하고 탐하고 또 탐하리라
그 모든걸 다 가질 수 없다는걸 알기에
탐하고 탐하고 또 탐하리라
결국 절규하고 절망할것을 알기에
탐하고 탐하고 또 탐하리라
마지막은 돌고 돌아 다시 시작함을 알기에
이름: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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