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차 창작 콘테스트 '시' 부문 - 가출 외 4편

by 청명 posted Dec 0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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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1.가출
2.이사
3.낙하산

4.구명조끼
5.중고거래


1.가출 

1984년 여름철 동틀 무렵 강원도 철원 GOP 부근 야산에서
가출한 새끼 초승달과 탈영한 병아리 군인 아저씨가 만났다

군인 아저씨! 여기서 뭐해요?
새벽안개 타고 부대를 몰래 빠져나와 애인에게 가려다 그만 길을 잃었어요

초승 달님은 여기서 뭐 하는데요?
해 세계가 궁금해 새벽 구름 타고 달 세계를 남몰래 빠져나왔다 저도 길을 잃었어요

애인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군에 오기 전 섹스를 할 때 고무풍선을 끼고 조심은 했는데...
임신했다고 꿈에서 계속 엉엉 울어 전화도 안 받고 해서 가보려고요

초승 달님은 왜 달 세계에서 남몰래 빠져나왔나요?
낮에 펼쳐지는 해의 세계는 어떤지 너무 궁금해서... 그것이 제 소원이었거든요

해의 세계는 어떻든가요?
눈부신 태양, 춤추는 바다, 화려한 옷을 입은 산, 거미줄 같은 도로와 그림 같은 집...
달의 세계에서 볼 수 없는 너무나 황홀한 신명나는 세상이더군요
그런데 이글거리는 태양을 너무 봐서인지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아요

지금,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는 무슨 소리인가요
제 엄마와 아빠, 가족들, 그리고 모든 달 세계 사람들이 저를 찾는 소리예요

지금, 산 아래서 들리는 소리는 무슨 소리인가요
부대에서 저를 찾는 간부들과 우리 부대 전우들 소리예요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계속 숨어 살 수는 없으니
병아리 군인 아저씨는 부대로 돌아가고, 저는 달 세계로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우리에 잘못이 더 커지지 않을 것 같아요

헤어지기 전 서로 한 가지 약속을 하면 어떨까요?
초승 달님은 매달 초승에 한 번씩 보름달로 변신 저를 밝게 비춰주세요
그러면 저는 지구에 모든 불을 끄고 초승 달님을 위해 기도해 줄게요


2.이사

남편 회갑기념 설악산 여행을 마치고 한계령·한강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사 가던 군 생활의 기억들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결혼해 남편이 소령 진급을 하고 교육을 받으러 첫 번째 이사 가던 날

아들은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며 이사 가지 말자고 계속 엉엉 울고

차량에 이삿짐이 전부 들어가지 않아 힘들게 산 일부 짐들은 못 실었지만,

큰 희망과 포부를 안고 진해를 향해서 한강대교를 지날 때

한 번도 살지 않았던 곳으로 가는 두려움에 눈시울 적시던 날, 남편은 한국 전쟁 시

예고 없이 한강대교 폭파로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은 분들이 많았다고 얘기한다

 

10년 후 동해안 최북단 바다가 보이는 부대 근무 시

내정되어 있던 남편 보직이 낙하산 인사로 어쩔 수 없이 피눈물 쏟으며 이사 가던 날

한계령을 넘는데 눈이 폭포수처럼 떨어져 내려 도로에 모래도 뿌리고 체인도 치고

차 와이퍼를 움직여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아 거북이처럼 고개를 넘던 기억...

 

군 생활 30여 번 이사하면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저돌적으로 살았던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젊은 날 군인 아내로 겪었던 추억...



3.낙하산

1988년 특전사 근무 시절
3개월에 한 번은 의무적으로 낙하산을 타야 한다

낙하산 강하가 있는 하루 전날은
손톱도 안 깎고, 면도도 안 하고,
아내와 잠자리도 같이 하지 않고...

낙하산을 타는 당일 아침
칠흑 같은 새벽 광주 비행장으로 갈 때면
나는 많은 생각에 잠긴다

낙하산 타기 바로 직전에는 더욱더 간절히 기도한다


4. 구명조끼

19907월 바람이 심하게 불던 어두운 밤 몽산포에서 해상침투훈련 중

난 고무보트 손잡이를 놓쳐 바다에 빠졌으나 팀원들은 모르고 계속 침투하는데

구명조끼에 의존한 채 망망대해에서 파도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떠돌게 되었다

 

필사적으로 장구류와 군화를 벗어 던지고 숨을 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파도는 오늘따라 더욱더 거칠게 인정사정없이 날 덮치고 때리기를 되풀이한다

인명구조 자격증도 따고 수영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파도가 치니...

 

배가 지나가고 있어 펄쩍펄쩍 뛰며 살려달라고 소리쳐도 그냥 지나간다

바닷물을 삼키고 토해내며 온 힘을 다해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구명조끼에 의존한 채 파도와 싸우며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조명탄이라도 있다면 멀리 보이는 고기잡이배에 구조 신호라도 보낼 수 있을 텐데

파도가 잔잔해지라고, 빨리 구조하러 오라고 계속 간절히 기도한다

아내와 아들, 부모님 모습이 스쳐 간다.

 

의식은 있지만 이젠, 기운도 빠지고 추워 허우적거리며 버틸 힘도 없다.

파도가 조금 가라앉고 있다. 이렇게 허망하게 죽게 된다니...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저기 멀리서 불빛이 다가온다


 


5.중고거래

중고거래 사이트에 3살 된 여아를 25만 원에 판다는 글이 올라왔다

여보세요! 어린아이를 판다고요? 네
아니, 아이가 물건인가요. 팔게! 내 것을 내가 판다는데 왜 간섭이세요
엄마가 어떻게 아이를 팔 수 있어요. 미혼모인가요...?

여보세요! 애는 건강해요? 좀 말랐지만 건강해요
조금 싸게 팔 수는 없나요? 그것은 안돼요
좋아요. 내일 사러 갈게요. 네. 아무도 모르게 혼자 오세요

엄마가 자기를 판다는 전화를 엿듣은 아이도
중고거래 사이트에 19살 된 여자를 20만 원에 판다는 글을 올렸다

여보세요! 예쁘게 생겼나요? 예쁘지는 않아요
직업은 있나요? 없어요...

아이를 판 날, 꿈에 하느님이 나타나 “엄마가 자식을 팔 수 있냐?”라고 해서
우유 살 돈도 없고, 놀러 다닐 수도 없고, 부모와 친구들이 알까 두려워...
쯧쯧. 겨우 고작 그런... 꿈에서 뻘떡 일어났다 다시 잠이 들었다

이번에는 꿈에 아이가 나타나 “엄마! 왜 나를 상품으로 둔갑시켰나요?
나는 상표도 없고 망가지지도 않았는데 왜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려놓았나요...”라고 해서
아가야! 엄마가... 놀라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며 꿈에서 깨어났다

아침을 먹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벌써 팔렸어요! 그게 아니고... 경찰서입니다



*응모자 성명 : 전상무
*이메일 주소 : jsangmoo@hanmail.net
*HP 연락처 : 010-9371-4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