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차 창작콘테스트 시 공모 - 5편

by 손성호 posted Sep 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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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언장

 

                              지은이 : 손성호


살아가라,살아가라, 죽도록 살아가라.

그리 말한 유언장 앞에서

이슬처럼 떨어지는 탁한 눈물들은

종이 글자 하나하나를 지워만 간다.


전봇대 하나가 생명이 다한 듯

깜빡깜빡 거리며 꾸벅꾸벅 졸고 있듯

시한부를 바라보는 그 삶 속에서

얻을 것은 무엇이며 잃을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아! 그럼에도 그대는 말한다.

살아가라,살아가라,죽도록 살아가라.


지워진 글자들은 그래서 또 다시 새겨졌나보다.

이어가는 자가 있기에 검은 머리카락들은 자라난다.


인생은 덧없고 태어난 이유조차 없이 썩어가 죽지만

썩어가 죽는 거에도 혹여 의미가 있을까 싶어.

유언장에 담긴 의미일까 싶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산송장의 오늘도

내일을 위해 썩어가며 살아간다.



         순결주의자


                         

                                  지은이 : 손성호


보이지 않는 혈흔 묻어버린

내 마음 반토막이 나버린다 한들

누가 슬퍼해주랴, 세상이 슬퍼해주랴?


나 혼자 흐느끼며 울어봐야

더러워진 내 마음 가엾게 여겨 보듬을 사람 없고

외로워서 진해진 슬픔은 숨조차 질식시키고

폭발해버린 우울증은 멀미를 유발한다.


당연하다. 남에겐 순결만을 강요하면서

혹여 내 마음 더럽혀지면 상처입었다고

슬퍼해달라 슬퍼해달라 애원해버린다.


추악하다 못해 더러운 고름 쏟아내며 

안에서 상해 불어 터져버린 순결주의자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알면서도 순결주의자였던 한 인간은

누군가 들어주지도 않을 빌어먹을 기도를

하고 또 하고 나이먹은 어린애나 다름이 없다.


더럽혀지기 전에 깨끗하게 살자.

백옥 순결 위해 싸우고 저항하자.

이 다짐이 무너진 오늘의 순결주의자는

지랄병까지 도져 도저히 꼴을 못봐주겠다.


그렇게 고해성사를 치르고 자리를 뜨더니

회개했다고 짓걸이며 발작도 안한다.

기도가 통했나보다. 지랄병은 사라진 걸 보니.



 

                     유적


 

                                지은이 : 손성호


산으로 가며. 산으로 가다.

산에서 올라가 힘들어버려

조잡스럽게 만들어진 벤치에 엉덩이 붙히다가

모양이 무척이나 기이한 게

꼭 초등학교 과학 교과서에 실릴 것만 같은

이쁘지도 않은 돌멩이를 보고선

고대 유물이 아닐까? 

하고 줍고서 멍떄리며

한참동안 녀석과 눈씨름 한 판 한 적이 있다.


왜 그랬을까? 하고 참...

지금 생각하면 쪽이 팔려 이불을 걷어차도 이상하지 않다.

나이먹고 다 죽어버린 동심이라도 생겨버린걸까?


근데 참 그게 재미가 있었다.

참말로 그게 재밌었다.

유물이 무슨 개똥 굴러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길에

아무렇지도 않게 굴러다닐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거 귀한 거 아니여? 유물이 맞다니깐! 하며

고고학자라도 된 마냥 망상해버리는 게

그리도 참 재미있었다.


결국 그 돌멩이는 가져오지도 않았다.

다시 길에 버리고 제 갈 길 갔다.

쓸데없는 짓으로 행복을 얻고 

쓸모없으니 버려버렸다.




       내일을 위하여



                            지은이 : 손성호


지평선 어두워도 걸음을 멈출수는 없지 않은가?

멈추면 오늘은 있어도 내일은 없다.


쓰러지면 아파서 그대로 주저 앉고 싶은 데

내일 보고싶은 마음에 울적해져 다시 일어선다.


어차피 의미 따윈 없다.

태어나는 의미라곤 있을까?

삶의 가치라는 건 있는가?

사람 사는 세계에 목표는 존재하는가?

인생의 목적도 이뤄져도 그만 안 이뤄져도 그만

허망할 뿐 아닌가?

                      

유혹이 머릿속을 통쨰로 태워버릴 듯 타올라도

번뇌가 한 인간의 인생을 매도해도

아마 내일을 보고 싶어서일 거다.

걸어야만 하는 이유는.


멍청함을 안다. 무지스러움은 경멸까지 일으킨다.

육신마저 상처받아 고통을 알아도

결국 난 미련하게 가려고 한다.

내일을 위하여.



       2016년 돈키호테



                                  지은이 : 손성호


인간 거머리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고

좀도둑이 옥살이 5년하면

큰도둑이 옥살이 2년한다.


정의따윈 사망선고만 기다리는 2016년 차가운 가을 밤.


2016년에도 비웃음 당하는 돈키호테들은 살아있다.


몽상 따라가면 그게 곧 아사(餓死)해 가는 저승길이요.

지옥살이도 좋으니 안개 속으로 걸어가는

자유롭다 못해 멍청해보이는 돈키호테들은

진정한 기사가 되기 위해 육갑을 떨어버린다.


돈이 곧 기사의 갑옷이며

권력이 곧 기사의 칼이며

명예가 곧 기사의 군마(馬)인 2016년 속에서


그들은 엿이나 먹으라며 출세에 반대표를 던져버린다.

세속따위 필요 없으니 도가 어쩌고 저쩌고니 하며

자신들만의 기사도를 지키며 기사가 되길 바란다.

갑옷도 칼도 군마도 없는 기사가.


미친 짓이다. 미쳐야만 사는거다.

이 시를 쓰고 있는 나도 미친거다.

시가 좋아 시가 곧 찰갑의 기사도가 되었으니.


그래서 돈키호테다. 나 역시도.

2016년의 이름도 없이 잊혀질 또 한 명의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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