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새벽
세상의 평화가 이곳에 내려와 앉는다.
치욕스런 어제의 기억을
새햐얀 명주로 덮어 버리고
또 다른 세상을 흉내내는
단 하나의 평화
세상의 고즈넉함이 이곳에 내려와 앉는다.
가로등의 따뜻한 허위가
어쩌면 내리는 눈을 녹여낼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곳은 단 하나의 고즈넉함
늙음-별에 바치다
한평생 숨죽이며
운명처럼 삶을 받아들이다
이제는 그 삶의 굴레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
여인이 웃는다
웃음이라는 커다란 병은 차라리 다행일까?
단 한번 그 마음을 열어
시원하다 여긴 적 없는
이 여인이 또 웃는다
그 웃음은 울음일까?
모든 기억은 하늘의 별에게 보낸
이 여인은 이후 빛을 잃었다
부디 마지막 가는 길
별의 빛을 기억해주길
꽃
피어나라 너의 붉음이여
봄부터 누군가의 눈물인양
황홀한 아름다움이여
그 벅찬 희열안에 숨겨진
검은날의 그림자는
그저 잊어도 좋다
맨발
발의 감촉은 진화에서 제외된
처량한 신세가 되고
현대를 살아가는 오만한 누구든
그 태초의 감촉이 세포 깊숙하게 박혀있어
대부분 느낄 수 없다
어느 날
바람과 같아지고 싶을 때
바다를 찾는다
맨발로 물기 머금은 신성한 모래알을 딛고
그 기억을 되짚어
드디어 겸손과 만나는 시간
태초의 나와 마주하며
벅차오르는 이 순간을 주체할 수 없어
울음을 운다
고요한 가운데 울리는
아득한 평화로움
그것은 맨발 끝의 촉수가
아직도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신호
하얀 포말은 하늘로 승화 되고
발길
걷고 또 걷는다
떨쳐내려던 나의 과거가
매장되어 있는 이 길
차마 너를
그곳에 묻지 못한 나는
너를 안고
걷고 또 걸어
추억이 머문 종착역에
너를 부린다
삶의 치욕이 되살아난
너와의 산책길에서
내가 느낀 건
그래도 살아있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