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차 창작콘테스트 시 5편 공모합니다.

by 김아일랜드 posted Oct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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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 水中

김지섭


깊은 숨을 쉬며 물속에 잠긴다

물속에 잠기면 
우리는 우리의 체형만큼 
그 공간을 차지할 수 있을까

물과 교합을 이루는 적시(適時)에는
죽어서 묻힌 것들이 
물의 피부로 떠오른다

나는, 죽어간 것들의 합이구나

길었던 숨이 이지러지고
나는 곡선을 그리며 수중을 빠져나온다

나는 유영하여 물과의 교미를 축제한다
나 죽은 것들을 위하여 살아갈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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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의 귀가

 

김지섭

 


집으로 오는 내내 흐린 하늘은 비를 쏟는다

 

나는 못내 비가 반가워 나는 오랜 공허를 꺼내 놓는다

그것이 우중에 축축하게 젖어가길 바라면서

 

고백컨대 언젠가부터 눈물이 나지 않았다

생이 너무나 무거웠던 탓일까

매일 외로움을 덮고 잤다

눈으로 밤을 지새워도 심연은 가물어갔다

어느덧 나의 생은 사막이었으며 나는 위의 유랑자였다

 

영영 갈증은 구원받지 못하는 것일까

 

빗발이 거세진다

돌이킬 없는 잘못들과

걷잡을 없는 연민이 휘몰아친다

 

오랜 공허여, 너는 흠뻑 젖어 뜨거운 눈물을 쏟아라!

탈진하여 부디 오늘 밤은 편히 잠들어라

비로소 너의 여명에 백로가 맺힐 것이다

그러니 힘껏 젖어라

 

우산도 없이 우중을 거닐어 집으로 향한다

집에 당도할 때까지 비는 그치지 아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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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사내의 이야기

김지섭


어느 날인가부터 사내는 방금 전 양치를 했는데도
입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아내는 이부터 해 넣자고 했다
사내는 말이 없었다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내뱉는
환호와 탄식에 모두 냄새가 풍겨왔다

썩어버린 속에서 나오는 육체의 고단한 냄새
사내의 우물 속(內) 냄새

사내는 레미콘을 몰았다
긴긴 밤 운전을 해 어느 시멘트 공장에 짐을 부렸다

잠이 든 국도에 레미콘 한 대가 졸려, 가다 멈추었다
잠들 수 없는 레미콘 거대한 숨 끌어 모아 다시 출발한다

시멘트가 굳어가는 동안 사내의 속은 썩어갔으리라
차라리 시멘트에서 풍기는 냄새가 이제는 좋으리라

사흘밤낮을 운전하고 온 사내는 뜨거운 국물에
소주를 비우고 깊은 잠에 들었다
얼마나 자고 싶었을까
우레 같이 방을 메우는 코골이 소리가 아프다 

사내는 그토록 말이 없다
한번만 짐이 무겁다고 신음해주었음 좋겠다
근데 사내는 그 일이 재밌다고 했다

재밌다 재밌다

사내의 썩어버린 냄새를 맡으며
구겨져 한참을 울어버린 아들도 그의 위대함에
눈앞의 삶이 썩지 않고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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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엽서

김지섭


누군가 붉은 광장이 그려진 엽서를 보내왔다

광장 속 어느 테라스에 그녀는 앉아있었다 
접시 부시는 소리와 
잔이 부딪혀 찰랑거리는 소리
활달하게 고조되는 사람들의 음성

해가 유독이 부서지던 날
그녀는 그만 끓어오르는 생에 못이겨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야 만다

붉은 광장 속 피어오르는 
붉은 웃음과 투명한 교류
모든 것이 건강하다

해결하지 못한 그리움을 위해 살리라
그 자유를 위해 살리라
붉은 광장에 뜨거운 눈물 하나 툭 떨어지지만
눈물은 흔적도 없이 말라갔다

그녀의 뺨, 마른 눈물자국으로 당겨온다
그렇게 격정이란 게 붉은 엽서를 활활 메우던 날이 있었다

나 통째로 흔들리던 날 
무너짐 앞에서 와르르 그녀의 엽서 꺼내본 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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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도 살아서 잘만 살아가는 것들

김지섭


파리도 날아 다니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 냄새도 나지 않는다
음식물이 향을 풍기지 않아 파리가 없다

파리가 내 몸에 와 붙어준담
나는 겨우 살아서 겨우 체취나 풍기기나 할텐데

이런 날 세탁기는 참 열심히도 돌아간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너는 지겹게 잘도 살아서 잘만 살아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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