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회 창작콘테스트 시 공모 - 5편

by 나믹 posted Oct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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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의 달세뇨


지은이 : 이재운


오선지에서 마음껏 노닐다 가는 시간

너는 네 마음대로 오갈 수 있겠지만

나는 도, 시를 왔다 갈 여력이 안 돼


어디까지나

두 귀를 혈액순환하는 외장형 핏줄에 나오는

무의식을 멈추면 인식하는

그 정도로만 꿈을 향유할 뿐인 걸


지금은 펜을 잡아야만

사람들의 기호에 맞출 내 의식을 깎아야만

배를 채울 수 있는 걸


가끔은 바람이 이끌고

수풀이 일제히 누워있는 들판에서

오색빛깔 영롱한 추억을 빚을 때 떠올리지만

지금 바래진 기억에 매이면 큰 코, 다칠 거야


울음을 팔아야만

엷은 한 조각 미소라도


지금은 여유를 접어야만

화풀이 대상이 되어줘야만

생을 굴릴수 있는걸


어차피 맞서 싸워야만

챙길 한 몫이라도


늦깎이로 치부된 이상은

두툼한 봉투 하나에 밀리고 마네.
















암연


지은이 : 이재운


폐부를 찌르는 강성한 햇볕처럼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는다 해도

둘은 상처를 가공하기에 더 자라난댔지

우중충한 종이 위에 맺던 작은 희망

하트 모양의 두 엄지 손가락 자국은

파스텔 가루처럼 비선명한 서리 자국이었어


모진 톱질에 잘리듯 세상이 잔혹해도

우린 그루터기처럼 자라난댔지

염원의 불꽃이 타는 만큼

반대로 더 얼었을지 몰라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면 그래


응어리를 삼키며 

다가온 신자유에게도 작별을 말하지

시공간을 비튼 이 공간에

빨간 지붕 쓴 집 짓고

단란하게 이 곳에 머무는 둘을 그렸건만...


미약하게나마 밝은 날에 조차도

서로를 부둥켜 안지 못 하고

운석같은 우박을 맞고

이름 모르는 곳에 각각 격리되어야 했어


우린 청춘을 더럽히지 않았다 말해.










고통 사


지은이 : 이재운

 

 

값어치 없는 것들을 충동구매 해

돈의 무게를 털어버리련다

 

꽉 찬 카트를 계산대로 밀어

서푼 같은 거래를 한다

 

멍청한 방법으로 행복 팔고

얻는 건 질 나쁜 고통,

한 줌의 사고를 산다

 

나를 향해 외치는 불쏘시개 같은 아우성

얼굴이 뜨거워지면 더 호탕하게 웃는다

이토록 결단력 없던 내가

치밀하게 일을 수행하는 순간이다

 

가로등 고장 난 이차선 도로에 나와 나의

든든하게 못 된, 배부르게 되바라진 꼴을

보아라.

부딪칠 준비 다 되었다.











오렌지 나무

 


지은이 : 이재운

 

저녁에도 싱싱하게 영그는 열매

빛이 뜨문뜨문 공간을 좁힌 시간에도

장식용 분수처럼 멀리 퍼지는 향기

주홍빛이 넘나들어

내 옷에도 살포시 들어왔다

 

익을수록 절정으로 가는 향그러움

꿈꿔왔던 나의 밍기뉴는

온 세상에 가지를 뻗어 뒤덮고

멍멍한 느낌의 구름을 건드려

비 대신 달콤한 과즙을 뿌려주었다

 

마른 피부에 스며오는 알록한 상큼함

그건,

태양이 잠을 자러 가기 전에

하늘에 하품을 띄워준 거야!‘

 

황혼이 깃든 늦은 오후에는

유난히 나무의 향이 짙었다










해 지는 무렵에

 

지은이 : 이재운


점점 짙어 진다

새벽 공기 닮은꼴 하늘에

스멀스멀 어둠이 덮쳐 흐른다.

 

해질녘 풍경을 응시하며

더는 그 물감이 진해지지 않길 바라지만

하나 둘 고등학교 자습시간에

켜지는 네모난 불빛

그럴수록 빨리 찾아오는 밤

 

공장의 매연처럼

야외의 암전을 끼얹는 시간

온화한 스님과 같이 농익은 밝음이

소멸하면 안 되는데

 

오묘한 맛을 낸 바깥 풍경은

여느 때와 같은 시간에 암전되네

모든 별이 눈뜨면 모를

희귀한 순간이 지금인데

 

태양을 살라먹는 노을 없이

파스텔 톤의 참 빛 하늘

그 곳은 탄산수같이 청량하고

심장 밖 또 다른 설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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