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차 창작 콘테스트 시 공모 - <늙은 눈알들> 외 4편

by 가람 posted Oct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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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눈알들

 

경비는 늘 관심이 많았다

아닌 척 돌아가는 눈동자 여백에

낮에는 기척 없이 다녔다

이제 좀 조용해지기 바랐던 집구석이

영영 조용해지게 됐다

 

자식들을 동네북처럼 강하게 키워 온 아빠는

집구석 정이 없다고 버릇처럼 말했다

그 말의 의미만큼 가볍고 가벼워져서

화투판으로 꽃놀이로 펄렁거리며 날아다녔다

동생은 동생대로 나는 나대로 나달나달한 우리는

단지 살아서 방석의 털을 바늘처럼 세웠다

아빠가 방석에 누운 날은 우연처럼 잡도리를 했다

방심할 때 왔다고 생각한 날들은 멀리서 최대한 규칙적이었다

나는 집을 나와 아빠 같은 사람들과 싸웠고

동생은 오프라인을 나갔다

결혼 이래 히스테리의 롤러코스터를 타던 엄마는

아무 주인공도 못되고 막 사이에 갇혀버렸다

 

책상에 조각칼도 조금은 녹이 슬었을 것이다

모두 나가고 미안한 마음도 삼일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잃어버린 사람들은 급기야

귀신을 친구삼기 시작했다

시소처럼

너무 무거운 죄의 무게만큼 끝도 없이 내려가는 것이다

지붕 밖으로 숨을 쉬는 가까스로 어린 이들을

아득한 집구석에서 올려본다 늙은 눈알들

한 번만 내려와 줄 수 없겠냐고

가족은 그런 것이라고

 

 

상사

 

 

이 사랑은 바닥에 발이 닿지 못하고

물속을 걷듯이 너에게 간다

담배를 무는 버릇이 생겼다 생각이 많을 때

적당히 발 돌리지 않으면 하나 더 하게 되지만,

입술로만 흥얼대는 일이 잦아졌다

속 빈 갈대의 저녁 노을이 들린다

키스는 저릿하게 정수리로 간다고 생각한다

널 생각하는 일도 그렇다

너는 걸음으로 오지 않고 저릿하게 온다

여운처럼

별 하나 새벽처럼

 

 

 

응시

 

우리가 하나의 모양을 멈추고

입술 근처에서 바라볼 때

숨 근처에서 숨을 쉴 때

좁은 허공 얇다란 파장이 생긴다

비눗방울에 손바닥을 갖다 대듯이 당신은

허공과 얼굴을 쓰다듬는다

시선 안 시선을 이해하고

현세 안 내세를 관찰한다

얇은 떨림 벗기고

꼼꼼히 숨긴 우주를 보고와

별자리 하나씩 이름을 풀어준다

먼 은하 같은 우수憂愁

모양 밖에서 하나가 된다

 

혜성처럼 얇게 반짝이고 사라진 표정들

이름을 얻었다

불러 주는 순간 한 겹 더 알게 됐다

당신은 달처럼 내려 본다

호흡은 파도 같다

끊임없이 집을 허물고

멈추지 않고 밀려간다

달빛은 바다를 꿰뚫어 본다

잔잔한 몸에 밤새 떠 있다

 

 

못 해요

 

 

꽃잎이 흩날림을 참을 수 없듯이

우리는 말들을 잠글 수 없어요

, 작은 까딱거림에도

살포시 어깨에 올리는

이야기는 홍조처럼 퍼져나가요

부드러운 손일수록 맥만을 짚지요 온 몸 실핏줄 달싹해요.

가볍게 흔들리던 나무가

단 번에 편 부채처럼 꽃잎을 떨 땐

무성한 사이로 혈을 짚힌 거에요

온 세상에. 새 피가 도는 것. 당신처럼.

빠르게 흩어진 꽃잎이 바닥에 닿기 전

얼마간 시간이 느려지는 걸 볼 수 있나요?

눈썹을 올리며

웃는 당신의 미간에 꽃잎이 닿아요

나는 그때 참을 수 없어요

꼭 끼워진 나사처럼 움직일 수 없어요

웃을 것 같은데 울 것 같아요

머무는 잠시들이 영원이 되라고, 꽃잎이 쉬지 않고 잠시를 만들라고

어떤 말이든 나, 멈출 수 없어요

 

 

 

 

 

모기

 

 

은밀하게 물린 무릎 뒤 자리

하도 긁다보면 감각이 없다

시원하다 아팠다가 참았다가 달콤했다

하루에 몇 번씩 무릎 뒤에 너를 썼다 지울 때

지우개 가루 같은 마음이 밀려 나온다

너무 많이 쓰면

쓸 때 아팠는지 지울 때 아팠는지도 모른다

앵앵거리는 소리에 잠 못 들다가

새벽이 조금씩 커튼을 열면

다시 한 번 써보는 것이다, 잘 지내는지

 

 



  한가람  

  grandeacqua@naver.com  

  010-8889-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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