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차 창작콘테스트 시 공모

by 유하나 posted Oct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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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갈대에게 뭐라 하지 마라.


갈대가 흔들리는 것은 바람이 좋아서이다. 

갈대는 흙의 품에 안겨 늘 같은 하늘을 바라봐야 했기에 

자신과 다르게 어디든 존재하는 바람을 동경했다


바람이 담고 있는 향은 도전적이며, 능동적이며, 위협적이었고 

갈대는 그 향에 취해 눈을 감은 채 바람에게 몸을 기대었다

때로는 무자비한 손길에도 갈대는 그저 고개를 흔들었다 

바람을 사랑하기에


갈대는 그렇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바람을 사랑하며 일생을 사는 것이다


갈대의 흔들림은 바람에 대한 지독한 사랑과 동경이다 



진실의 벽   

너 어제는 그렇게 휩쓸더니 그렇게 사납더니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멀건 표정으로 거기 앉아있구나

수많은 세월을 쌓아 만든 성벽이 너의 입김 한 번에 날아갈 수 있다니
두려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좌절하다 문득,  
그 문명도 네 앞에서는 불면 날아가는 민들레 꽃 씨앗처럼 약한 존재인데 
나는 왜 그토록 문명의 눈에 쩔쩔매었는가 싶다  

그러고 보면 시선의 탑 따위는 생 앞에 무용지물인 것을    
그래 자연 너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다른 두려움은 그 위용을 잃는구나  


가을이 선명해지면    

가을이 왔다는 걸 모를 리 없다 
신발 밑창에 아스라지는 나뭇잎이, 
휙 걸쳐 입은 겉옷이 무방비 상태에 의자 밑에 깔려 구겨진 것이, 
그들이 가을을 이야기한다  

바스락대는 것들이 아득한 기억을 끄집어내고 내 마음을 두드린다 
너에게 준 상처가 내게 돌아와 손을 펴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내 손톱에는 여전히 너의 온기가 지독하게 물들어있다 

하지만 이젠 너에게 사랑 한 모금 내어달라 구걸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 
나는 다시 가을만 밟는다 

선명해지는 발자욱과 선명해지는 주름살이 
너와의 시간을 되돌려줄 것만 같아 그저 밟고 눌러본다 
그러니 그 모든 바스라짐이 다 의미 있는 계절이다



달 

낮에 한껏 살갗을 그을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너를 보았다
구름에 찢기고, 나뭇가지에 찔린 너를

달아 네 모습이 처량하고 날카로운데 
누가 너에게 그토록 검은 잉크를 뿌렸는가 

너는 대답 대신 나의 심장에 너의 눈물을 수놓는구나 
이토록 먼 데도 네 상처가 내게까지 닿는다 

그래, 오늘 너를 보아 다행이다 
내 비록 가난한 영혼이어도 달아 너를 담을 수 있으니  
네 슬픔이 온전히 내게 들어와 흐를 수 있으니
그것으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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