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거리
네가 디디고 서 있던 이 거리는
네가 아닌 다른 이들의 발걸음 아래 굳게 얼어간다
나는 무릎을 굽혀
무심한 아스팔트 위
네가 서 있던 꼭 그 자리
그곳의 시림을 닦아내어 볼에 대어 보았다
얼어버린 풀꽃이 녹으며 내는 미약한 향이 볼을 타고 흘렀다
이 찰나의 향은 네 영원한 발자국이 될 게다
미완성
한나절의 끄트머리
밤조차 희끄무레하게 미완성된 지금
다리 하나 없는 책상에 턱을 괴고 앉아
나직이 토막 말들을 읊어본다
말들은 차마 문장이 되지 못해 저들끼리 부딪히고
끝내 이 밤은 미완성인 채 넘어가고 있다
보그락보그락 흰 거품을 일으키며 부스러지는,
그것들이 안타까워 나는 염도가 지나친 눈물을 흘린다
모든 것이 부족하거나 지나쳐서 미완성인 이 밤
끝내다
매일 밤을 위태로이 하루의 끝자락에 주저앉아
돌아오지 않을, 이미 저물어 바래버린 것을 치켜뜨고 기다리고
누군가 안타까이 어깨를 움켜와
그가 살포시 얼굴을 등에 묻자
아스라이 먼 과거의 향이 마비될 듯 독하게 황홀하다
나는 나즈막이 말한다
저물어 버린 것이 다시 한 바퀴를 억겁이 돌아올 동안
나의 곁에서
부끄러운 회한, 그리고 슬픈 어떤 것을
가령 미련같은 것에 대한 무서운 식욕을 돋워달라고
언젠가
저문 것을 다시 맞이하고서야 활활이 타들어 갈 수 있게
그는 대답 대신 희뿌연 손가락으로 등줄기를 훑는다
나는 가느라이 신음하며 충실히 응했다
이제 비단 기다림 뿐만이 존재하진 않을 것이다
어느새 저문 것은 머릿속 저 멀리 저물어 버리고
긴긴 기다림을 끝내다
곁에서
나의 곁에 목멘 채 덩그러이
나날이 시린 바닷 결 푸른 물빛 두 눈에 굽이쳐
세월의 소금기는 묵직한 사슬에 베여
사근사근히 녹빛으로 물들이고
세상 한 다 모아놓은 듯한 서러운 눈물에
가랑비에 옷 젖듯 삭아 가는 걸 나는 몰랐네
여느 때처럼 가느라이 한숨 쉬다
그 실날같은 숨결에 들썩이는 널 보았다
평생토록 무참할 줄 알았던 그 사슬은
너의 버들같은 여린 손으로
고요히 쓰다듬기만 해도 부스러졌을 거라는 생각을 하다
울고 말았다
그 한 방울의 염도가 지독했는지
마침내 나는 내 곁에서 너를 떠나보냈다
이제 나의 곁에 너는 없고
네가 하염없이 모아 둔 구름같은 회한만 덩그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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